"아시아의 호랑이가 몰려온다"

지난 10월 삼성그룹이 영국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자 더 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유럽등 유럽의 주요언론들은 한국 일본등 아시아기업들의
현지진출 현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환영과 우려감을 동시에 표명했다.

아시아업체들이 유럽대륙에 진출,주민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준 긍정적인
측면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때 자본을 수출하던 유럽대륙이 아시아의
주요 투자대상지로 전락한 "역류"현상에 자조감 같은 것을 담고있었다.

쇠락하는 유럽기업의 빈공간을 메우는 아시아기업의 움직임이 그만큼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그룹이 25만평의 부지에 전자단지를 세우게될 북잉글랜드
지역만봐도 손쉽게 알수있다.

삼성그룹의 복합 생산기지가 들어서게될 윈야드지역 5분거리에는
삼성전자가 지난 88년부터 가동중인 컬러TV 공장이 있다.

북쪽의 워싱턴지역에는 금성사 전자레인지공장이 지난 89년부터 진을
치고있다.

인근에는 금성사가 매년 5월 준공을 목표로 축구장 2배 크기의 대형
전자단지를 건설중이다.

또 인켈의 카오디오공장과 삼미의 음향기기공장도 본격가동하는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전자업체들이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기업의 위세는 보다 당당하다.

금성사 인근 선덜랜드 지역에는 닛산자동차가 22만평의 거대한 부지에
대규모 자동차생산공장을 차려놓고 있으며 스미토모 후지쓰 산요 고마쓰
다부치 NSK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제조업체들도 본격 가동중이다.

이밖에 홍콩의 컬러TV 메이커인 공화와 대만의 플로피디스크업체등
여타 아시아 기업들도 지난해부터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아시아 기업뿐 아니라 미국의 코닝,네덜란드 필립스등 세계적 제조업체
들도 영국기업을 대신하여 활동하고 있다.

지난 85년이후 외국기업이 이 지역에 60억달러 이상을 투자,3만2천명을
고용했다.

산업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현지 인구의 10%이상을 외국기업이 부양하는
셈이라는게 북잉글랜드 투자청(NDC)의 분석이다.

영국에서는 영국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돌만하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해외투자를 유치하는데 지금도 열중이다.

주민들도 기업의 국적은 따지지 않는다.

영국땅에 있으면 영국기업으로 간주,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있다.

영국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등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데 전력을 쏟고있다.

북아일랜드등 실업률이 높은 지역은 지나친 보조금지급을 규제하는
유럽연합(EU)의 감시를 피해가면서까지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느라
골몰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대륙에서 생산공장을 세울때 투자비의 일정분을 무상보조
받는것은 이제 당연시 되고있다.

이 보다는 EU규정의 최대 보조한도인 35%를 어떻게 받아내느냐가
관건이다.

투자비 지원외에도 당국과의 협상 여부에 따라 공장부지를 거의 공짜로
얻어낼수 있다.

원활한 공장 운영을 위해 공장진입로를 닦아주는등 사회간접자본도
마련해준다.

초기 투자의 추가투자에 대한 지원도 뒤따른다.

장기 실업자를 고용할 경우 사회보장 부담을 면제해 주는 지역도있다.

기존의 부실공장을 인수할때는 상당기간 적자분을 보상해 주기도한다.

특히 사업전망이 좋은 첨단제조업의 경우는 지원책이 엄청나다.

정부가 자진해서 시중금리보다 훨씬 저렴한 자금을 끌어준다.

우리처럼 굳이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호소할 필요가 없다.

은행담당자들이 직접 대출금을 갖고 오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다.

직업훈련비를 보조해 주고 한국 현지훈련에는 비행기값을 지급하는
곳도 있다.

이밖에 전기료를 할인해 주는등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수없는 혜택을
누리며 생산활동을 할수있다.

90년대 들어 노조활동이 온건세를 보이고 영국등 일부지역은 우리보다
실질적인 임금수준이 낮은 장점도 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저임금의 이점을 누릴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유럽이 투자천국인것만은 아니다.

이같은 혜택뒤에는 함정도 만만치 않게 도사리고 있다.

생산원가의 40%가 넘는 부품을 EU역내에서 구입해야 한다.

규정된 부품 현지화비율을 지키지 못할 경우 유럽에서 생산해도 역외제품
으로 간주,수입관세를 물어야 한다.

국가에 따라 회사수익의 절반이상을 법인세 명목으로 현지 정부에
반납해야 한다.

기업이 물어야하는 사회보장및 환경보존비용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등은 10%가 넘는 결근율을 줄여 나가야하는
난제를 안고있다.

게다가 당초 사업계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그 혜택을 되돌려줘야
한다.

당근이 일시에 채찍으로 바뀌는 곳이 유럽이다.

스페인 남부에 진출한 혼다사가 금년초 문을 닫고 독일의 일본기업들이
철수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문이다.

우리업체중에도 벌써부터 고전하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기업이 유럽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삼성 럭키금성 대우등 대기업그룹들이 현지에 일관생산체제를
갖추고 삼성전자 금성사등은 유럽 현지기업 못지않은 거대한 타운도
형성중이다.

신성 동일등 부품업체가 모기업을 따라 동반 진출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등에 비하면 투자규모나 업종다양화등에서 이제 초기진입
단계를 겨우 벗어난 정도다.

현지화 문턱에 이른 지금 여전히 수많은 난제를 풀어 나가야하는 입장에
처해있다.

또 저임금 둔화된 노조활동등 유럽의 기업환경이 지금처럼 항상 좋을수도
없다.

눈앞에 보이는 당근만 좇을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게 현실이다.

"실업난을 극복하면 유럽의 기업환경은 과거로 되돌아갈수 있다는 점을
감안, 생존전략을 장기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김의명주브뤼셀대사의
얘기를 곰곰이 되새겨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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