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시즌도 길모퉁이에서 그 모습을 내보일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런때가 되면 예수를 머릿속에 그리며 사는 사람들은 가벼운 흥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미켈란젤로, 다빈치 심지어 이름없는 화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은
여러가지 상황의 예수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남겨왔다.

최옥자박사(75).

일제하 도쿄 동방대학 의학부에서 수학한 의학박사이자 현세종대학교 명예
총장인 그녀는 미캘리포니아 풀러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여복사임과 동시
에 미파슨스에서 미술의 기초를 닦은 예술인이다.

요즈음 최총장은 예수의 상만을 그리며 산다.

그녀는 예수의 새로운 상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밤샘작업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0월18일 저녁 서울프레스센터 전시실에는 수많은 명사들이 모여
들었다.

그녀가 그린 150여점의 예수상, 50여점의 예수동상, 50여점의 예수석고상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한경직목사는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이자리에 참석, 전시회의 의미를 기도
로써 화답했다.

최목사의 세종호텔 스튜디오를 찾아가 예수상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그녀의
근황을 들어보았다.


-요즈음 예수상 그리는 일에 매진하고 계신것으로 아는데 예수상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것은 무엇입니까.

<> 최총장 =진실함과 깨끗함을 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질서의 필요조건이고 깨끗함은 아름다움,즉 미의 전제조건입니다.

그렇다고 예수상만 그리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깨끗한 자연도
그립니다.

-그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최총장 =그 어느 누구도 이룰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목표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할 뿐이죠.예수의 상을 수없이 만들고
또 그려가다 보니 그의 모습이 천태만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르고 저때 다르고 성경 구절구절에 따라 달리 나타납니다.

그것은 내마음이 예수라는 진실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화폭에 그리기도 하고 조각으로 만드는 예수의 상이
결코 "완벽한 상"일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안에 있다"는 구절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겠군요.

<> 최총장 =그렇습니다.

우리집 큰 손녀가 올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을때 선물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붓글씨로 쓰신 성경말씀 하나를
받고 싶다"고 해서 써준 글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의학을 전공하고 이제는 예술가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종교와
미술의 세계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 최총장 =나의 어릴때 꿈은 미술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위에서도 소질이 있다고들 했고요.

그러나 나의 부친은 "나라잃은 사람이 미술을 해서 남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하시며 의술을 배워 힘없는 백성을 돌볼것을 강권하셨습니
다.

그런 연유로 나는 명치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던 오라버니
곁으로 보내졌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공부가 잘되던가요.

<> 최총장 =물론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인들과 경쟁을
하다보니 이들에게 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오기로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일본에 유학을 떠나실 정도였다면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리라 여겨지는데.

<> 최총장 =나의 조부는 최기남으로 협판(요즈음의차관)을 지냈고 부친은
최원식으로 은행원과 광산업을 했으니 당시 상황으로는 여유가 없었다고는
말할수 없죠.

-여성에게 의학공부를 하라고 조언하셨다면 당시로서는 매우 개화된
부친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 최총장 =부친은 한성고보를 졸업한 개화인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심지어 "결혼도 하지 말고 오로지 나라 잃은 설움을 일소하기 위해
의술로써 봉사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남자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셨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결혼하시게 됐습니까.

<> 최총장 =내가 일본인들에 지지 않겠다는 일념은 공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유학중 동보예술제가 도쿄에서 열렸는데 며칠밤을 꼬박 새워 우리
한국여성의 전통의상인형을 만들어 출품했습니다.

미쓰코시 백화점 본점전시실에 전시된 내 작품은 유일한 한국인의
작품이었던 동시에 최고상이 주어졌습니다.

일본인들은 이를 뉴스영화로 만들어 극장에서 상영했고 서울에서
이를 본 우리집 바깥 어른이 저를 도쿄까지 찾아오게 됐습니다.

인형이 우리 둘 사이를 맺어준 셈입니다.

-진실은 질서의 필요조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음 우리주변에는
세금도둑,지존파,온보현,성수대교붕괴등 세상이 어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 최총장 =요즈음 세상이 혼돈스럽고 어지럽다고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만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 인류가 살아온 과거의 역사는 전쟁과 약육강식의 파괴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야말로 모든 질서를 파괴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전쟁과 더불어 살았지만 요즈음 우리는 평화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유가 있다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보다 미세한 부분에까지 미치지
않을수 없습니다.

당연히 좋지 않은 일들이 보다 크게 보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큰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 최총장 =그렇지는 않습니다.

큰 문제이긴 하지만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층은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맹자가 말했듯이 사람은 본래 선하다는 뜻이죠. 선한 마음을 잘 개발하면
혼돈과 어지러움은 많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시는것 같은데.

<> 최총장 =나는 폭력을 버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선 나라의 지도자들,특히 국회의원들이 더 잘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으로 해야할 사람들이 폭력과 물리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보고
자라난 어린이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모든 일은 국회안에서 해결돼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밖에서 방황하는 것은 부부싸움을 한 아내가 집밖으로
뛰쳐나가 아이들과 남편이 굶고 직장과 학교로 가도록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도여자사범대학(세종대학의 전신)을 세우게 된 연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 최총장 =설립당시만 해도 여성교육을 제대로 수용할수 있는
대학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국민의 반이상일 뿐더러 아이들 교육과 가정의 중심이되는
여성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설립한 동기라고 할수 있습니다.

-한때 세종대가 어려운 학내분규에 휘말린 적이 있었는데 이에대해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 최총장 =하고싶은 이야기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세종학원에 잡음이 많았던 것은 내가 부덕했기 때문이라고
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종학원을 아껴주신 모든 국민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풀러 신학교에 진학하게 된 배경은.

<> 최총장 =강단과 학교생활을 하면서 사람은 보다 많이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되었고 신문화를 배우려면 미국도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의 풀러 신학교는 신문화와 종교 그리고 더 알아야겠다는 욕구를
채워준 기회였습니다.

-교회에서 설교도 하십니까.

<> 최총장 =우리 세종호텔에 직원을 위주로한 세종선교회가 있는데
여기서 설교하는 것을 비롯 일주일에 3회의 고정적인 설교를 합니다.

-미 파슨스에서 미술을 시작하신 것이 1990년이니까 69세때였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학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 최총장 =파슨스는 예술에 대한 강한 욕구와 그 욕구를 구현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다행히 나에게 그런면들이 있다고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최근 잠을 자다 전광석화처럼 스쳐지나가는 예수의 상을 컴퓨터로
그린 작품을 보여주며 어린아이 처럼 좋아하는 그녀의 적극성과
순진함은 그녀가 7순이 넘은 할머니라기 보다는 인간과 예수 그리고
예술의 세계에 심취해 있는 한 사람의 따뜻한 이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 대담 = 양봉진 부장대우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