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조선국의 남쪽에 한군데밖에 없던 근거지를 동해쪽과
서해쪽에 각각 한군데씩 더 늘린 것이었다.

일차적으로 우선 반도의 동서남 세군데에 발판을 마련하여 차츰 손길을
넓혀 나가려는 일본측의 용의주도한 저의를 조선국측에서 알 턱이 없었다.

설령 신헌이 그것을 꿰뚫어 보았다 하더라도 이미 조정에서 개국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꾸어 수호조약을 체결토록 지시가 내려온 터이고, 또
일본측의 강압적인 태도앞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제7조에서는 조선국 연안을 항해하는데 있어서 섬과 암초가 많고, 수심을
알 길이 없어 극히 위험하니, 해안측량과 해도작성의 권한을 일본측이
가진다고 규정하였다.

지금까지도 비밀리에, 혹은 공공연히 연안의 측량을 부분적으로 해
왔었는데, 그것을 조선국측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토록 못박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부분만이 아닌, 반도의 전해역을 마음놓고 세밀히 측량하여
해도를 작성할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제8조에 있어서는 영사관의 설치를 목적으로,우선 자기네 상인을 관리한다
는 명목하에 일본정부의 관원을 조선국의 개항지에 상주케 할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제10조에서는 조선국의 개항지에서 일어난 일본인의 범죄는 그것이
비록 조선인에 대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일본국법에 의해서 단죄한다는
치외법권을 인정토록 하였다.

그 수호조약을 강화도조약이라고 일컫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불평등조약
이었다.

일방적으로 일본국에만 유리하도록 거의 모든 조항이 교묘하게 짜여있는
것이었다.

첫머리에서는 허울좋게 조선국은 자주의 나라로 일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해 놓고서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동등하기는 커녕 자기네만
장차 조선국에서 마음놓고 설쳐댈수 있도록 꾸며놓았던 것이다.

우선 개항문제만 보더라도 일본에 대하여 조선국만 두곳을 더 열어줄 뿐,
일본의 어느 항구도 조선국에 대해서 개항하여 조계지의 건설을 인정한다는
구절은 없다.

그리고 측량과 해도작성에 있어서도 조선국의 연안만 그렇게 할뿐, 일본국
쪽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며, 영사관 설치를 위한 관원의 상주 역시
마찬가지로 일본이 조선국의 개항지에다가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치외법권 문제는 얼른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그 속에 엄청난 흉계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