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한 꿈을 안고 시골에서 살았던 어린시절,그 순박했던 동심들이 한데
어울렸다해서 우리는 스스로의 모임을 동심회라 일컫는다.

이 모임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은 1956년,그러니까 지금부터 꼬박
38년전의 일이다.

우리는 다같이 호남벌의 명문 남성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자기딴에는 무엇으로 보나 남에게 별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동급생 다섯사람이 좀더 가까운 친구가 되자며 부지런히 만났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우리는 삶은 고구마를 싸들고 솜리 주변의 산과
들을 누비고 다녔다.

배산 수도산 새실 방개골 만경강변 백구면 오산면 등지를 함께 싸돌아
다니며 대화하고 웃고 노래하는동안 우리의 우정은 몰라보게 다져졌다.

드디어 1956년10월6일(토)저녁 우리다섯 사람은 최용근군(한성안전
대표)집에서 모임을 갖고 동심회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이렇게 하여 필자와 최군,그리고 김준용군(1984년1월 작고),김영배
(오산여중교사),송민군(국민대문과대학장)은 평생 형제와같은 친구가
될수있었다.

그 이듬해인 1957년3월 필자는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상대에
합격하는 바람에 친구들보다 1년먼저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하던 우리는 동심회를 우리학년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같은 학교의 후배들에게도 계속 이어주자는데 뜻이 모아졌다.

곧바로 똑똑한 1년후배 몇사람을 만나 그 뜻을 전하고 우리의 만남을
세세히 알렸다.

그들도 우리의 뜻에 기꺼이 찬성하면서 제2의 동심회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때에 김용술군(경향신문 전편집국장,현재 민주당 마포갑지구당위원장),
남철수군(자영사업),천윤길(부평 평강교회목사)등이 우리의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심회는 5년동안 확장되어 회원수는 모두 스물다섯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소식이 끊기고 멀어진 회원도 없지않아
지금은 열서넛이 만날수 있다.

그 중에서는 김영석군(대한교육보험 전사장),주신길군(자영사업),김명수군
(한국외국어대 교수),이보선군(중소기업은행 지점장),송재윤군(연합통신
전논설위원),김정기군(대전지점 전부장검사,현재 변호사)도 들어있다.

이처럼 우리의 직업이나 철학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지금도 만나기만
하면 순백의 소년시절로 돌아간다.

안식구들끼리도 가깝게 지내는 바람에 이제는 가족모임으로 확대되어
서로가 형제처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