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갑곶진 앞바다에서는 요란한 포성이 계속 울려퍼졌다. 수송선을
제외한 다섯 척의 군함이 야간 기동훈련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실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흡사 실전을 방불케하는 광경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구로다의 명령에 따라 실시하는 위협 작전이었다.

야간 포성은 낮의 공포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온통 강화도의 시꺼먼 하늘과 씨꺼먼 땅,그리고 시꺼먼 바다가 쩌렁쩌렁
빠개지기라도 하는 듯 무시무시한 공포 분위기가 섬 전체를 뒤덮었다.

술기운에 젖어서 잠자리에 들었던 신헌도 포성에 놀라 일어났고,옆방에
유숙하고 있는 윤자승도 잠이 들려다가 뛰어 일어나 허겁지겁 신헌의
방으로 건너갔다.

"대란 어건, 이게 무슨 일이지요?"

"음- 고이얀 것들"

"이밤붕에 포성이라니,정말 무슨 일을 일으키려는 게 아닐까요?"

"그녀석들의 공갈이지 뭐"

"공갈이면 다행입니다만." 윤자승의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이 역력했다.

구로다란 놈이 뇌까렸던대로 실제로 이밤중에 강화부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려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헌은 두려움보다는 분노의 빛이 한결 강해 보였다.

그는 잠시 취기에 지백드드해진 두 눈을 지그시 감고서 포성을 듣고
있다가 눈을 뜨며 너불너불한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어 내렸다.

그리고 혼자 중얼기리듯이 말햇다.

"제놈들이 이런다고 내가 호락호락 고개를 숙일 줄 아나? 흥!어림도
없지" 어영대장다운 풍모였다.

쿠쿵! 콰쾅! 쾅! 콩! 쿠쿵!.. 흡사 밤하늘에 번쩍번쩍 번개가 채는
듯,그리고 천둥이 잘렬해대는 듯 하였다.

포성만 울리는 게 아니었다.

이따금 대포소리에 섞여,파팡파팡파팡. 탕탕탕탕 탕탕탕탕. 요한한
총성도 들려왔다.

마치 강화부를 쑥밭으로 만들려고 상륙작전을 전개하는 것만 같았다.

신헌과 윤자승이 그렇게 긴장에 휩싸여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구로다와 이노우에는 그 요한한 포성과 총성이 마치 무슨 축제에서
폭죽을 터뜨려대며 불꽃놀이라도 하는 듯 마냥 통쾌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구로다 도노, 내일 회담에서는 틀림없이 고분고분 우리 말을 들을
것입니다. 강하게 밀어붙이질 않고, 부드럽게 살짝 밀어도 말입니다"

"허허허. 그럴 거요. 저 대포소리 앞에 지금 신헌인가 뭔가 그자의
불알이 탱탱 오그라붙고 있을 테니까"

"하하하."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