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요 확대에 웃고 신3고에 운다''

대망의 ''수출 1,000억달러시대''를 열 95년을 앞둔 국내 수출기업들의 표정
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올해 우리기업들의 수출이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낼수 있었던 대표적 외생
변수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기회복이 주도한 해외수요 확대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호재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넓어진다고 해서 수출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품질 가격 마케팅 등 각 부문에서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해외
수요는 그저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은 지금 이런 상황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당장 우려되는게 환율.금리.국제원자재값이 동시에 가파른 상승커브를
그리고 있는 이른바 "신3고현상"이다.

기업입장에선 제품가격의 상승압력으로 이어지는 악재들이다.

올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들 악성 변수들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국내 기업들을 괴롭힐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우선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이 내년말께는 달러당 785원선(산업연구원.삼성
경제연구소)으로까지 내려앉을(원고 가속화) 전망이다.

이달 23일 현재 원화환율이 795원인 점을 감안하면 1년새 1.5%가까이
더 절상된다는 얘기다.

올초의 대미달러 환율이 달러당 810원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기업들이
수출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절상폭"은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받아들여질게
분명하다.

무역수지는 계속 적자폭을 늘려가고 있는데(외화수요 증대->환율절하요인)
도 원화값이 되레 절상을 치닫고 있는 이유는 증시등으로의 외화자금
유입이 크게 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증권시장 개방확대의 여파로 실물부문이 애꿎게 홍역을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환율만 걱정되는게 아니다.

기업들이 수출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끌어다 써야하는 각종 차입금의
금리가 마냥 치솟고 있는 것도 기업의 시름을 깊게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3%대에서 안정돼 있었던 국제기준금리(LIBOR.
런던은행간 금리)가 최근 6%대를 돌파했다.

상대적으로 값이 싼 해외자금차입에 많이 의존해온 대형 수출업체들로서는
자금조달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해외금리의 상승은 국내금융기관에서도 금리인상을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

그 여파로 애오라지 국내자금차입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들에까지
불똥이 튈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성장보다는 안정"이라는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통화관리를 강화하는 바람에 국내금리는 빠른 상승세를 이어왔다.

안팎을 가릴 것 없이 돈값이 올라가고 있고 그 여파로 기업들이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버거워지게 된 셈이다.

자체 기술력을 향상시켜 환율이나 금리부담을 흡수하는 길이 없지는
않지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국제원자재 가격 역시 수출전선에 주름살로
작용할 것 같다.

원유 석유화학제품 생고무 원당등 각종 수출제품원자재의 국제가격이
최근 1년새 최고 100%까지 오른데 이어 내년에도 가파른 상승추세를 계속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외부 환경, 특히 환율 금리 원자재값등 외생변수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
으로 큰게 한국의 수출기업들이고 보면 이런 3개 거시지표의 상승곡선은
적잖은 우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이 이런 악재들을 얼마나 딛고 일어서느냐가 내년도 수출전선의
최대 승부처가 될 게다.

이런 걱정거리에 비춰보면 각 전문기관들이 내놓고 있는 내년도 수출
전망치는 그런대로 기업들의 "분투"를 예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공자원부 산하 산업연구원(KIET)은 내년도 수출이 1,023억달러로 올해
(930억달러 예상)보다 10%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는 1,029억달러, 경제기획원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030억달러, 쌍용경제연구소는 1,038억달러로 더욱 장미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는 내년 수출이 1,010억달러에 그칠
것이란 다소 신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

어쨌거나 지난 64년 수출실적 1억달러를 돌파했을때 요란한 잔치분위기였던
한국은 그 31년만인 95년엔 1,000억달러 수출시대에 접어들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수출외형이 30년 남짓한 사이에 1,000배나 불어나게 된다는 얘기다.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내년 수출이 이처럼 1,000억달러시대를 열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몇가지로 나눠 생각할수 있다.

첫째는 최근 몇년간 진행돼 온 산업구조조정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전자(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선박등 중화학부문에서의 수출자생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점을 꼽을 만 하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는 올해 단일품목으로는 처음 연간 수출실적 100억달러
를 넘어섰고 내년에는 그 기세를 더욱 떨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관련기업들이 64메가D램등 첨단 메모리분야에서 경쟁국인 일본을 앞질러
상용화에 나설 채비를 갖추는등 기술과 품질부문에서 확실한 경쟁력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해외수요의 확대에 따른 효과다.

특히 주력시장인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내년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어서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등 국내 주력제품의 시장진출 기회가 커질 것이다.

KIET는 대미수출이 올해 작년보다 8.5% 늘어나는데 이어 내년에도 이와
비슷한 비율로 증가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시장통합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도 올해
수준으로 늘어나는건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동남아와 중국등 아시아지역 후발개도국들에 대한 수출호황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문기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섬유 신발 가전제품등 가공조립제품을 주로 미국 유럽
일본등 선진국들에 내보내고 있는데 중간 기자재와 원료를 한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경기 회복에 따른 수입수요 확대를 주로 이들 후발개도국이 누리고
있지만 한국은 이들 국가에 원.부자재를 공급함으로써 선진국들에 대한
우회 간접수출증대 효과를 볼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신3고라는 벽을 만난 한국 수출업계는 어느때보다도 극명한 업종간
대.중소기업간 양극화현상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않아도 최근 몇년간 사양화의 길을 걸어온 신발 완구등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업종은 보다 깊은 수출경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

또 위기관리능력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기업들에 비해 중소기업들이
신3고의 타격을 깊게 받을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해마다 여름철이면 불거져 나오는 산업현장에서의 노사분규가
내년에는 어떤 양상으로 재현될 것인지도 내년 수출전선의 중요 돌출변수가
될 것이다.

"수출 1,000억달러 시대"의 원년이 될 내년은 이래저래 기업들앞에 갖가지
암초가 가로놓인 힘겨운 한해가 될 전망이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