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후쿠야마가 2년전에 쓴 "역사의 종말"은 제목이 암시하는
절박성에다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에 힘입어 폭넓은 반향을 일으키고있다.

고난이 많다고 스스로 믿는 한국인들에겐 더욱 흥미로운 소재다.

그가 말하는 역사란 진화있는 역사만 역사지,진화가 끝나면 역사도
끝난다는 헤겔철학의 역사다.

헤겔 자신도,그를 받든 칼 마르크스도 인간사회의 진화는 무한정 계속
되는게 아니라 염원하던 이상사회가 실현되면 진화,즉 역사는 끝난다고
믿었다.

다만 다른 점은 헤겔이 그런 사회를 자유주의 국가로 보았던데 대해
마르크스는 그것을 공산사회라고 바란 것이다.

80년대말로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자유주의만 남았다.

그렇다면 헤겔쪽이 맞았고 역사도 종말을 맞은게 아니냐는 자문에서
후쿠야마는 출발한다.

그는 민주사회에 문제가 많음을 시인하면서도 한발 물러서 이 시점에서
역사가 지속되느냐,끝나느냐는 "자유주의 내부에 더 뿌리깊은 불만의
원천이 있느냐" 여부에 달렸다고 조건을 달았다.

자유주의의 불만적 요소에 대한 저자의 물음에 우리는 과연 어떤 답을
줄수 있는가.

후쿠야마 자신도 공산주의 도미노현상직후인 92년에 흥분속에서 이글을
썼기 때문에 좀더 낙관쪽에 기울었을지 모른다.

그후 2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가 관찰을 한다면 과연 그때와 같은
답이 나올까.

민주주의 내부의 불만원천이 대단치 않아 역사가 끝났다고 재확인할
것인가,새로운 도전과 응전으로 진화의 역사가 더 계속된다고 쓸것인가.

편의상 분기점을 1990년으로 긋는다면 그 이전.이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문제를 간명히 하기위해 구공산권내와 자유세계에서의 대표적 변화만
따져보자.

우선 러시아등 구공산권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불씨가 남아있어 언제건 다시 타오를 가능성은 없는가.

다음 자유주의 사회의 기축이 근년에 오면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의 문제다.

첫째 새 러시아의 진흙탕 싸움은 더 두고 볼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헝가리 발틱 우크라이나 폴란드등에서의 좌익의 재기는 일시적 진폭일
따름인가,사회주의 시장제도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중국은 등소평사후에
진로를 어느 방향으로 돌릴 것인가.

전문가들은 굳이 비관은 안하지만 그렇다고 낙관도 안한다.

체제의 미래예측이 이리도 신중한데는 히틀러 스탈린등 20세기에 겪은
인류의 쓴 체험이 19세기 낙관론에 완전히 배신당한 탓이 크다.

80년대 벼량 까지만 해도 키신저등 많은 지성들은 "공산주의는 발달된
과학의 힘으로 어떤 내부 반발이라도 진압,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었다.

공산권 붕괴현상은 의외순간에 일어났던 것이다.

둘째 정통 자유국가에서 조차 어느 한곳도 지도자의 권위가 서는데가
없다.

총리가 검찰수사를 받는 이탈리아,중간선거에 대패한 클린턴,온갖
수모속의 일본 정계,1표차로 연명한 통독의 콜,황혼 추문에 말린
프랑스 미테랑,거기에 존폐가 거론되는 영왕실까지 치면 아마 근
2백나라 정상중 당분간 남아공의 만델라 하나를 빼면 죽을 지경일
것이다.

안으로 눈을 돌려보자. 시드니의 세계화구상 발표후 진용을 추스르느라
부산하지만 세금도둑 한가지만해도 보통 심각하지가 않다.

왕조때 탐관오리의 수탈을 "네죄를 네가 알렷다"고 등친 강도형이라
한다면 요새 공직범죄는 눈감으면 코베어가는 아사리판 절도형이라
할수 있는 것이 다르다.

문제의 근원은 정치에 있다고 본다.

후계자 무혈선출 경험이 얕고 게다가 감투라면 환장하는 국민성이
겹쳐 이미 내심은 모두 포스트 YS의 잿밥에 가있다.

순해뵈던 야당당수의 느닷없는 강수도 결국 3년앞 대권겨루기가
본심이다.

그러나 국내현상도 근본적으로는 지도권 약화라는 시대조류에 예외는
아니다.

왜 그런가.

우선 국가단위로,미소양극이 다극으로 분산된 이후 어느 편이건
전열은 흩어졌다.

냉전때는 모든 나라가 두편으로 갈라져 누구도 멋대로 열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개개국민도 불안했지만 그보다 중소국의 대권에는 이면에 일종의
우방진영의 아그레망이 필요했다.

가령 냉전시대라면 일본에서 사회당 당수의 총리되기가 그리 수월했을까.

공산권 해체로 초래된 국제질서 이완은 각국의 경내로 파급된다.

우방간의 필요적 승인관계를 벗어난 시임 국가권력의 비중은 위광을
잃고 약화되기 쉽다.

나아가 강력한 지도력을 옹위,나라 전체가 뭉쳐서 맞서야할 대외의
적도 아직은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새시대 세계공통의 원리다.

그런데 이 원리가 배제되는 예외지역이 있다.

발칸 중동 아프리카의 일부등 충돌의 다발 상습 지역들이다.

실은 이범주에 한반도가 내포되느냐 여부가 우리의 중요한 당면문제의
하나인데 여기서 대립이 심하다.

우익보수라고 지칭되는 세력은 그렇다고 확신하고,진보 경향은 북도
동족이라는 당위를 세워 대결논리를 거부한다.

12.12문제 대북문제 차기집권문제등에서 중요한 잣대는 감정 아닌
현실이어야 한다.

주동자들이 잘잘못을 내심 인지하느냐,북이 일정시간 경과후 현실쪽으로
전환할거냐,팔이 안으로 굽는다면서 지역등의 갈등만 계속할거냐가
각기 그 변수다.

부의 모에 대한 강압청혼을 못내 꺼려 부자관계 지속을 고민하는 자식
심중이나 국토가 하나돼도 이념의 계속 갈등을 우려해 대북 강공기회
일실을 아쉬워하는 마음도 이해할만한 일면이 있다.

이땅의 뒤얽힌 매듭을 풀려면 뒷간에 오를때 갖는 겸손을 종일 버리지
말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