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맨하턴.

세계예술의 집합지이다.

첨단전시와 공연이 매일 수백회씩 열린다.

세계각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현대의 예술을 얘기한다.

이들의 최근 화두는 "멀티미디어".

음악 미술 무용등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이 자신을 멀티미디어작가라고
소개한다.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등 대중가수들도 단순한 가수로서의 계약이 아니라
멀티미디어예술가로서의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의 표현수단은 음악이라는 매체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
이다.

"예술에 과학기술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예술장르는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등 예술사조의 대두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첨단기술이 예술의 영역을 보다 넓히고 있는 것이지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멀티미디어예술가 석희 와그너씨(40)의 얘기이다.

와그너씨는 사진을 전공한 조각가.

그림도 그린다.

그의 최근 관심은 헐리우드 영화필름을 이용한 설치예술작업.

히치코크감독 영화의 심리교육적인 장면을 표현한다.

영화도 아니고 미술도 아니다.

"모든 예술장르에 설치개념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예술공간이 아닌
복합공간을 요구하게 되죠. 전시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무용등 공연예술도
그런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예술의 멀티화는 기존 예술장르의 해체와 결합현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컴퓨터를 이용한 신종 멀티미디어예술도 탄생하고 있다.

컴퓨터는 이제 모든색을 칠할 수있고 모든음을 낼수 있다.

여기에 통신까지 사용하면 그야말로 새로운 예술의 세계가 탄생한다.

지난 10월8일부터 11월6일까지 뉴욕에서는 서울-뉴욕 멀티미디어전이
열렸다.

한국문화원과 백남준씨가 지원했다.

40편의 실험멀티미디어영화와 20여가지의 전자예술작품이 설치됐다.

한국작가 10여명이 참가했다.

디지탈예술제도 동시에 개최됐다.

이 예술제는 인터네트를 통해 전세계 컴퓨터통신망에 멀티미디어전을
소개하는 행사.

출품작을 컴퓨터통신을 통해 가입자의 안방에 전시하는 것이다.

디지털방식이니까 실물처럼 생생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대형PC통신 "니프티서브"에는 예술작품을 공개하는 장이 마련되고
있다.

통신회원은 예술작품을 감상할뿐 아니라 그것을 가공해 새로운 영상을
만들수도 있다.

작품을 공개한뒤 20일만 지나면 가공된 영상이 PC통신을 통해 원작가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통신을 활용한 공동작업도 멀티예술의 새축이다.

일본의 멀티미디어작가 나카타니카와씨는 94년4월 일본의 가네자와시를
중심으로 전국 7곳의 전시장을 디지털통신회선으로 연결했다.

각회선마다 PC를 접속, 컴퓨터화면을 통해 디지털영상을 그릴 수 있게
했다.

참가자는 화상을 그리고 송신한다.

이를 받는 사람은 자기식대로 화상을 가공해 그것을 또 송신한다.

이렇게 해서 일곱번을 돌면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진다.

각지의 화가와 전자색연필을 통해 그림을 주고 받는 것이다.

쌍방향예술이다.

완전히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새로운 미디어를 체험한다.

이런 기술이 발달되면 누구나 어디서든지 작품을 변형시킬 수 있다.

디지털기술과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전문작가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멀티미디어시대는 작가측이 일방적으로 작품을 제시하던 작가주의시대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사람과 의식을 교류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나카타니카와씨의 얘기이다.

문학도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를 통해 시를 발표하고 문단에 입성하기도 한다.

작곡가도 될수 있다.

누군가 곡을 만들면 이 작품은 통신을 통해 세계각지의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다른사람과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 작품은 예술이 된다.

작가 혹은 예술가의 개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멀티미디어시대는 모든 영역 사이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 오춘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