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영국 런던시의 한 구청은 기술국을 국제입찰에 부쳤다.

낙찰된 기업은 미국계 엔지니어링업체인 브라운& 루트사. 민간기업에,
그것도 외국회사에 지방정부 조직 일부를 떼어 판 것이다.

이 기술국은 36가지 업무를 맡아 온 부서다.

도로관리 쓰레기수거 도시계획허가 등. 구청측은 그러나 행정서비스
혁신과 예산절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매각을 결정했다.

매각대상인 기술국측에도 응찰기회는 줬다. 하지만 기술국측은 입찰
초반에 탈락했다.

응찰가격도 낮았거니와 "앞으로 이러 저렇게 하겠다"고 제시한 행정
서비스의 내용도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민간기업으로 넘어가버린 기술국의 직원들은 졸지에 공무원 신분을
잃어버렸다. 언제 일자리에서 쫓겨날지 전전긍긍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정부조직 일부를 민간에 매각한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구미에서는 "구문"도 이런 구문이 없다.

미국 남부지역에선 행형을 맡는 교도소까지도 민간에 매각해 "경영"을
맡긴지 오래다.

영국은 90년대들어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모든 공공서비스를 경쟁입찰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교육 직업훈련 병원등은 이미 대부분 민간위탁경영 방식이 도입돼
있다.

정책기능과 집행기능의 분리라는 새로운 개념에 착안한 결과다.

"고객(납세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모든 걸 민영화한다". 이게 "유럽형"
행정개혁의 핵심이다.

기득권의 테두리안에서 몇가지 행정집행 양식만을 바꿔보는 한국형
행정개혁과는 근본부터가 틀리다.

유럽관료들은 영국 석학 에드워드 드보노가 말하는 수평적 사고를
체득한 덕분일까.

행정개혁에 임하는 발상부터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생각의 잣대를 민으로 바꾸고보니 거칠 게 아무것도 없더라".

영국 메이저총리가 얼마전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그는 지난 6월 또 하나의 "발상 전환"을 정책으로 연결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지난 40여년동안 상점의 일요일 영업을 금지해 온 "상점법"을 개정해
발효시킨 것. 대형 상점들은 6시간동안, 소규모 상점들은 제한없이
일요일 영업이 가능해졌다.

영국이 가톨릭분파인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철저한 기독교국가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성역파괴 조치"였다. 물론 종교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실업문제해결과 유통산업촉진이 종교 율법보다 중요하다는게
영국 경제관료들의 판단이었다.

관료들은 총리에게 "결심"을 재촉했고 총리는 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였다.

경제무대에서 "주연"이기를 고집해 왔던 영국정부는 이제 그 자리를
민간기업들에 넘겨주고 있다.

대신 투자분위기를 조성하고 기업을 도와주는 조연이나 조명기술자
쯤으로 스스로의 몸을 낮추었다.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나 기준대출금리의 파격적인 완화, 외환규제 철폐와
여신한도 폐지등 최근 단행된 일련의 금융개혁조치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영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하루 자동차 통행량이 7백만대나 되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엔
"교통체증"이란 말이 없다.

관료들이 "시민들이 가려워할 만한 곳을 미리 찾아내 긁어주는" 선진
행정을 펴는 덕분이다.

병목현상이 나타난다 싶으면 어느새 새 신호등이 등장한다. 고정된
좁은 공간에는 회전도로를 만들어 넣거나 지하도로를 뚫는다. 차량
소통이 원활해지는 건 물론이다.

이런 식으로 행정을 하다보니 프랑스의 도시나 농촌은 일년내내 거의
"공사중"이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또 우리를 편하게 하는 일을 하는구나"는
것이라고 한다.

행정에 거리낄 일이 없으니 정책수립과정에서도 숨길 일이 없다.

프랑스정부는 지난 76년에 일찌감치 "정보와 자유에 관한 법"을 만들어
모든 행정업무와 문서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말 그대로 "투명한 행정" 그 자체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새로 수립하려고 하면 그 동기나 배경까지도
문서화해서 공개토록 제도화돼 있다.

관료들의 정책수립에 졸속이나 자기과시같은 건 애초부터 작용할 여지가
없다.

"제3의 인권선언"으로 불리고 있는 행정정보 공개야말로 투명한 행정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틀이 되고 있다.

한국정부가 이제 막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행정 옴부즈맨"제도는
유럽에선 구문중의 구문이다.

독립적인 기관으로 활동을 보장받고 있는 옴부즈맨들은 관료들의 정책에
대해 성역없이 조사하고 평가를 내려 그 결과를 국회와 국민들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일을 맡고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이런 제도적
장치에 힘입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투명한 제도와 공복의식이 확립돼 있는 만큼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움츠릴 게 없다.

"유럽은 관료들이 움직이는 관료공화국"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그런 그들조차 새롭게 몰아치는 변혁의 태풍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부민영화같은 혁신적 조치가 그 것이다.

한국 관료조직과는 "변화"의 차원이 다르다.

<정리=이학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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