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경북대교수/경제학>

이번 정부의 돌연한 남북경협활성화조처와 북측의 예상했던 부정적
대응조처를 보면서,남북간의 탈냉전게임은 이제 핵게임에서 경협게임
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핵게임에서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전제로 북을 코너에 밀어넣어 핵포기를
강요하는 압박작전을 구사하였으나 오히려 북한의 핵카드돌파전략이
이니시어티브를 잡고 미국을 끌어들여 한국전략을 무력화시킨 꼴이
되었다.

이제 경협게임에서는 북체제의 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국제사회로 끌어
내어 개방과 개혁의 바람으로 미일과 공조체제로 통일의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정부의 전략과,미.일은 끌어들이되 한국은 소외시키고,또 한국의
민간기업은 끌어들이되 한국정부는 소외시키면서 체제를 유지 발전
시키려는 북한의 전략이 맞부딪치고 있는것 같다.

경협게임으로 들어가는 서막에서부터 벌써 언어의 공중전이 전개되고
있는 느낌이지만 그러나 그속에서 남북양측이 각각 91년의 남북기본
합의서와 남북경제공동위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것을 살려야 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것은 매우 주목할만하다.

물론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그래도 우리는 차거운 겨울, 언뜻 설매
그림자라도 접한듯한 환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 수년간 남북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의 대외투자의 물줄기가
동남아와 중국 특히 중국의 발해만일대로 흘러갔다.

남국관계의 악화가 중국의 이익이 될수도 있다는 측면이라고 해도 좋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경제공동위가 가동되었더라면 대외투자의 물줄기
가 북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투자과정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점은
경제공동위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해 나갈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북의 경제사정도 좋아져 결과적으로 통일비용을 줄일수
있게 하고 북의 노동력과 자원을 이용하여 한국기업의 국제경쟁력도
증가했을 것이며, 북의 온건개방파가 득세하여 핵개발한쪽으로만
질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북의 핵카드로 한국이 소외된채 북.미수교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북.일수교도 결국 한국을 소외시키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게된
상황에서 이제는 한국이 경협을 받아달라고 요청하고 북이 거부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2년여전만해도 북이 요청하고 김달현부총리가 와서 "은혜에 보답하겠으니
하자는 겁니다"라고 호소했는데 핵경협연계론으로 나오다가 이제는 반대가
된 것이다.

더구나 임가공이나 무역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해 둘 제도적 장치도
없다.

투자보장협정도 안된 마당에 투자는 그야말로 상대의 호의에 의존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남북기본합의서체제가 깨지게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새삼 묻지않을수 없다.

또 남북분단에 책임이 있는 미국이 핵문제를 들고나와 남북관계에
끼어들어 경협중단압력을 가하고 결과적으로 한국에 경수로지원금을
부담지우고 그 생색은 자신들이 내는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다행히 이번에 남북양측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경제공동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부활의 필요성을 암묵리에 표시함으로써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릴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어떻하든 이 불씨를 살리고 키울수 있는 "남북경협라운드"를 설치하여
이번에는 남북경협의 "불회귀점"( point of no return )을 통과할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여기에서 우선 남북간에 언어의 공중전이나 이빨을 숨기고 악수하는
전략의 숨바꼭질을 집어치우기 바란다.

분단50년간 그짓을 했는데 이제 성숙할 때도 되었고 또 지금은 국제적
으로 그럴 상황도 아니다.

여기에서 우선 분단50년을 맞이하는 성숙기의 남북은 이제 공식적인
대화못지않게 비공식적인 물밑 대화의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중국과 대만사이에도 비공식적인 접촉채널이 두꺼워 표면적인 대립의
배후에서 강력한 안전변역할을 하고있지 않은가.

두터운 물밑 대화의 채널을 갖고 서로 문제점과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협력의 범위와 방법을 진지하게 의논할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군사적 땅굴이 아니라 경제적 땅굴,혹은 정치적 땅굴을 만들자고
강조했던것도 그때문이다.

땅굴에서 막걸리나 마시고 있어도 없는것보다 훨씬 낫다.

물밑의 비공식관계와 물위의 공식적인 관계의 이중장치를 설치하여
그것을 통하여 "남북경협라운드"를 발족시킬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싶다.

북측은 경제재건을 위하여 미.일을 끌어들이는 대신 주민들을 단결시키기
위한 외부주적으로 한국을 설정하는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또 중국쪽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로는 "7.5.3.1전략"가설도 있다고 한다.

화교를 중심으로 동남아자본7 구미자본5 일본자본3 한국자본1의 비율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주적론은 그야말로 4강에 한손에는 북을,다른 한손에는
쥐어주는 결과가 될수밖에 없고 마침내 남북이 순차적으로 4강의
새우등이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화교자본이나 일본자본의 경우 북의 경제특구를 중국의 각
경제특구 베트남,그리고 동남아 각국의 경제특구와 비교하여 진출하게
된다.

또 두만강유역의 경우에도 중국이 훈춘특구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지역과 북의 나진.선봉지구가 경쟁관계에 놓여있다.

북한은 배후 시장이 없고 노동의 질에는 다소 유리하나 임금면에는
불리하며 과거 외채상환미불금면에서도 불리하다.

또 북한과 재일조총련간의 합영사업도 북의 관료주의 내지 당의경영개입
으로 사실상 실패했다는 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개방의 바람에 따라 체제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잘알고 있고 따라서 당분간은 중국이나 베트남정도의 "사회주의시장경제"
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시장경제형 체제개혁을
동반하지 않는 부분적 개방만으로는 외국자본의 투자를 충분히 기대할수
없다는 것도 명백하다.

북은 한국자본의 적극적인 유치를 통하여 보다 유리한 투자여건을 만드는
쪽으로 가기를 간곡히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자본의 대북과잉관심의 배후에는 이윤이외의 요소,가령 애국심이나
향토애같은것도 강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활용해야 할것이다.

아울러 북의 시장경제형개혁의 정도와 방법도 공식.비공식의 남북경협
라운드를 통하여 모색할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북의 일련의 개방관련법속에는 "공화국영역밖에 거주하는 조선동포들도
투자할수있다"는 정도에 머물고 있는데 적어도 중국의 "대만동포
투자우대규정"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밑는다.

아울러 투자보장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 남북교역의 민족내부교역선언
등 "남북경협라운드"에서 해결해야 할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가 산적해있다.

남북지도자의 큰정치 큰안목이 지금처럼 절실할때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