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10일 우리측이 제의한 남북경제협력활성화방안을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거부했다.

"새로운 내용"만 있다면 북한은 우리측 제의를 수용하겠다는 얘기다.

북한측이 기대하는 새로운 내용이란 무엇인가.

북측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는 모든 형태의 경제교류를 의미할 것이다.

반세기가까이 족벌독재정권을 구축해온 북한으로서는 체제보전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더구나 지금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시대에서 김정일시대로 넘어가는
권력이양기에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평화통일"이니 "민족공동체"같은 용어만으로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때다.

미국이 NPT체제고수를 통한 세계패권을 대북 협상목표로 삼은 반면
북한은 체제유지 자체가 핵협상의 목표였다.

북측 입장에서 보면 북.미 핵협상은 북한체제를 위협했던 미국의
전면적인 경제봉쇄조치(컨테인먼트)를 핵카드로 좌절시킨 것이다.

북한은 핵협상타결로 외부로부터 자기네 체제가 직접적으로 위협
받으리라는 불안이 어느정도 가셨을 것이다.

북한정권은 이제 체제의 유지발전을 위해 경제회복에 전념할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외국자본 외국기술의 도입을 서두를수 있게 됐고 외국과의 경제교류에도
박차를 가할수 있게됐다.

한가지 북한정권담당자들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것은 독재권력유지의
초석이 되는 정보통제기능이 외국과의 경제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와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정보통제능력의 마비는 곧 체제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한경협에 한국"정부"가 끼어든다는게 저들은 못마땅한
것이다.

남북경협활성화를 위한 한국정부의 제안속에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는게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저들이 "한국형"경수로의 북한반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는
것도 정치적 차원의 대남불신에서 비롯된것이다.

북한이 남북경제교류를 추진하면서 우리정부를 배제한채 개별기업들만
접촉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정치적인 관계개선보다는 기업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자세가 역력하다.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교조적 사회주의 국가가 앞으로는 기업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갈 것임을 예고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시장진출을 모색하고있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
규제는 앞으로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정부의 기업간섭은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마이너스 요인만을 고려하는
선으로 후퇴하는게 바람직 하다.

과거처럼 정부가 북한의 기업투자환경을 평가하고 투자결정을 내려주기
보다는 기업에 참고가 될만한 정확한 정보를 기업과 공유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전인미답의 미개척시장을 둘러싸고 각국기업간에 조만간
벌어지게될 시장선점 경쟁에서 우리기업들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간의 경제교류도 한번 거래가 성사되면 원점으로
되돌리기가 어려운데다 걷잡을수 없이 거래규모가 확대된다는 속성을
갖고있다.

핵문제가 매듭지어지고 북.미 북.일간 수교움직임이 빨라지면 북한의
대외경제거래도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독일과 무역사무소를 개설하기로 합의했고 미국기업들의
북한상륙도 이젠 시간문제라는 소식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정부도 북한의 이같은 변화가능성을 예견하고
대비할 때가 된 것같다.

그러자면 우리의 대북한 대응자세부터 달라져야겠다.

북한을 민족적 화해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믿을수 없는 위험한 대상
으로 취급할 것인가하는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위해서는 민족적 양심이나 극한적인 군사력대결
에 의지하기보다는 이해득실에 호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나가는게
훨씬 효과적이고 현실적이다.

정부의 북한정책기조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게
되면 앞으로의 대북협상도 과거처럼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경제거래식의
모양새를 갖출게 분명하다.

미국이 북한핵에 대해 전쟁이 아닌 협상을 택한 것은 막대한 전비보다
협상을 통해 북한에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게(그것도 대부분 한국돈으로)
훨씬 싸게 먹힌다는 점을 고려했으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남북의 협상테이블이 경제적 이해를 따지는 자리로 변하게되면 어느
한쪽이 일방통행식 선언이나 제안을 해대고 다른쪽은 이를 무조건
거부해버리는 상황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