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이탈리아패션도 실제로는 50년대에 들어와서야
산업화되기 시작했다.

유럽패션을 리드하던 르네상스시대의 전통이 피렌체공국 메디치가의
공주가 프랑스로 시집가면서 프랑스로 이동해간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는 뛰어난 직물업에도 불구하고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강점은 유명 디자이너가 자신의 일에 프로답게
임해 소비자의 욕구충족과 새유행 만들기에 힘을 쏟아왔고 기업들도
디자이너를 신뢰하고 설비를 갖추어 판매면에 힘을 기울인 결과라고
요약할수 있다.

이탈리아패션산업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히는 대규모 패션전시회도
50년대 들어와 시작됐다.

51년 정부와 업계가 손을 맞잡고 로마에서 대대적인 패션쇼를 개최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유명디자이너를 이탈리아소재를 사용,이탈리아에서
봉제한다는 조건을 달고 초청했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디자이너들이 양성되기 시작했다.

60년대 들어 피렌체에서 패션쇼가,67년에는 로마에서 알타모다패션쇼가
시작됐다. 이 기간중 정상급 의류업체 3개사가 공동출자해 FTM이란 회사를
만들었다.

이 FTM사는 일종의 공동쇼룸으로서 신인디자이너를 지원,성장시켜
패션산업진흥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 FTM이 밀라노패션의 효시이다.

70년대 들어 피렌체에서는 여성복중심의 기성복박람회와 니트전시회가
열렸고 72년 남성복전시회,75년 아동복박람회가 잇달아 개최되기
시작했다.

70년대 중반부터 여성기성복박람회는 밀라노로 이동,밀라노 벤데모다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개성있는 이벤트 개최로 70년대초부터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기성복디자이너들이 각국 바이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80년대 밀라노는 세계패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탈리아패션산업은 기성복시장이 활성화된 70년대부터 유력디자이너와
대기업이 결합하여 디자이너는 아이디어와 기획부문을 맡고 대기업은
생산 판촉 판매를 담당,상호보완협력함으로써 성장기반을 마련할수
있었다.

베네통 GFT 마르조토등 이탈리아 3대 섬유회사 중 GFT가 유력디자이너
와 결합해 성장한 전형적인 기업이다.

GFT는 71년 웅가로를 시작으로 78년 조르지오 아르마니,8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88년 피에르 카르댕등 디자이너와 제휴,시장을 석권했다.

이탈리아 패션의 잠재력은 패션시스템에 있다.

이탈리아 패션시스템의 구성요인은 <>좋은 원단을 디자인해내는
텍스타일디자이너 <>그 디자인을 생산해내는 직물업자<>이 직물을 응용,
새롭게 선보이는 디자이너 <>디자인을 바탕으로 완제품을 생산해내는
의류생산업자 <>전산화시스템 <>재고부담이 없는 기획생산시스템등을
들수있다.

이밖에 이를 지원해<>유력디자이너를 발굴 육성하는 패션에이전트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형지로 제작,창조성을 산업화해주는 모델리스트
<>패션 날염 직물디자인 니트등으로 세분화된 전문기획사들<>실기위주의
교육풍토<>제품별 기술향상을 목적으로하는 각종 협회,전문연구소 등이
이탈리아패션을 밑받침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특히 최근 20년동안 패션비즈니스를 진전시켜 패션도시
밀라노의 이미지를 일신시켰고 이탈리아 무역진흥회(ICE)등 여러 조직의
노력으로 프랑스를 능가하는 세를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밀라노컬렉션이다.

또 오일쇼크 이후 섬유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중소영세기업의
활동을 부활시켜 최근에는 기술혁신과 하이테크에 의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