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윤 < 한국외국어대 교수 >

오는 15일 인도네시아의 보고르(Bogor)에서 열리게 된 APEC정상회담은
아태지역의 18개국 정상들이 모여 역내무역과 투자자유화를 주요 골자로
하는 보고르선언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의 시애틀정상회담에 멕시코와 파푸아뉴기니가 가입했고 금년에도
칠레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바 있으므로 APEC는 현재 총 18개국을 회원국
으로 하고 있는데, 내년초 베트남이 ASEAN에 가입한후 APEC에도 동참할
의사를 밝히고 있어서 APEC는 세계적인 경제블럭화 추세에 따라 기능과
역할의 증대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역내 국가들의 참여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아시아와 태평양이라는 방대한 지역에 산재와 회원국을 포용하고
있는 APEC는 AFTA(아시아자유무역지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같이
APEC내의 또 다른 특정국가 간의 경제및 무역협력기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이들기구와의 관계가 미묘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몇몇 AFTA참여국과 일부 동아시아 국가가 미련을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경제회의(EAEC)는 APEC의 발전과정에서 걸림돌이 될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말레이사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UR협상이 농업보조금 문제로 미국과 서유럽
국가간의 이견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직후 6개 ASEAN회원국과 한국 일본
중국등 동아시아국가들로만 구성된 동아시아경제그룹(EAEG)의 창설을 전격
제안한바 있다.

그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경제통합의 최종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는 EU와
북미경제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NAFTA에 대응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익을 극대화 할수 있는 강력한 지역경제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마하티르는 그후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이 새로운 배타적 경제블럭을
가지는 것을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과 역내 국가들의 유보적
태도를 고려하여 EAEG보다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로 EAEC를 새로이 제안한바
있다.

마하티르의 구상은 역내 국가들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1991년 10월의
ASEAN 경제각료회의가 EAEC의 창설에 합의함으로써 실현 전망을 밝게
했으나 인도네시아가 EAEC를 APEC내에서 운용해야 한국과 일본 등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EAEC는 결국 구상의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APEC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지는 현 시점에서 EAEC의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배타적인 경제블록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
이 한국과 일본 등에 대해서 EAEC에 참여치 말도록 강력한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ASEAN회원국들도 역내교역 보다는 미국과 EU 등 역외시장에 훨씬
더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 회원국들의 지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NAFTA가 개방적 성향을 유지하지
못하고, EU 또한 ASEAN의 수출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등장한다면 동아시아
경제블록의 필요성이 재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APEC의 창설로 EAEC의 실현이 멀어지자 마하티르는 시애틀 정상회담에
불참하여 불유쾌함을 강력하게 나타냈다.

그후 클린턴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보고르 정상회담에는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마하티르는 아직껏 APEC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는 다른 경우지만 대만의 리덩후이총통이나 리엔잔행정원장은 중국의
강력한 반발로 작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고르 회담에도 참석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모처럼 마련된 아태지역 경제협력의 장에 작지 않은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