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 형세를 보니 왕도로 삼을만 하다. 더욱이 조운이 통하고 도리가
고르며 인사에도 편한 것이 많다"

왕조를 개창한 군주(역성수지왕)로서 도읍을 옮기지 않을수 없었던 태조
이성계가 새수도의 유력한 후보지로 떠오른 계룡산과 무악등지를 최종적으로
답사한 뒤 남경(한양)에 이르러 내린 결론이다.

풍수지리설에 기울었던 대신들의 의견에 따라 처음에는 새도읍을 무악으로
정하려 하기도 했던 태조가 이렇게 생각을 바꾼 결정적 배경의 하나는
한강의 존재였다.

그로부터 600년동안 한강은 수도 서울의 젖줄이자 한국의 동맥으로 민족사
의 애환을 담은채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지금 강동구 방이동에 있는 몽촌토성일대를 옛날에는 "고원강촌"이라고
불렀다.

흙으로 담장을 둘러 쌓은 것 같은 옛 토성에 둘러싸인 한 강변마을이란
뜻이다.

넓직한 강변마을의 풍광이 수려한 이곳에는 뜻있는 문사들이 많이 찾아와
은거하며 한가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이곳에 살면서 많은 시를 남긴 석간 조운 (1332~1404)과
사가정 서거정(1420~1488)은 늘 한강을 바라보며 한강을 시제로 삼아 시를
썼던 문사다.

석간은 여말선초의 혼란스런 시기에 살면서 몇몇요직을 거치기도 했으나
성품이 고고하여 자신의 뜻대로 지내면서 소신을 굽힌적이 없는 사람이고
사가정은 조선조여섯왕을 섬기면서 요직을 두루거친 관운좋기로 유명했던
명사였다.

세대는 달라지만 한강의 강상풍월을 즐기며 만년을 한가롭게 보내면서도
늘 나라를 걱정했던 이물들이다.

"강은/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강은 오늘을
살면서/미래를 산다/강은 헤아릴수 없는 집합이면서/단일과 평등을 유지
한다.

성천아카데미(회장 기세훈)와 시를 사랑하는 모임(대표 김수남)이 9일
여의도 나루터에 ''한강시비''를 세웠다.

여의도 개발초부터 20여년을 이웃해 살아오면서 한강을 바라보며 명상하고
시상을 가다듬었던 구상시인의 ''강''과 ''강가에서''를 학계의 원로인 유달영
박사가 글씨를 써서 새긴 2m 남짓한 높이의 시비이다.

한강이 우리 마음과 목숨의 젖줄임을 깨우쳐 우리들이 각자의 삶을 살피고
가다듬도록 하는 것이 시비 건립의 본뜻이라고 한다.

연초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오다가 성수대교 붕괴사고때문에 꼬리를 감춰버린
거창하고 화려한 서울정도600년 기념행사가운데 이보다 뜻깊은 일은 없을듯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