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최근까지의 APEC의 성과는 협력의 초보적 단계라고 할수 있는 자료및
정보의 교환, 정책협의 등에 치중하여 왔고 구체적 사업으로는 무역진흥
과학기술 교통등 기능적 분야의 비교적 쟁점이 없는 사업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회원국및 역내 소지역간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무역
자유화문제를 다루어 나가지 않을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APEC에서 무역자유화를 다루는데는 적어도 두가지 어려움이 존재
한다.

먼저 APEC설립당시 합의한 협력원칙에 따르자면 협력의 기본목표가
"대화와 협의"에 있으며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방식에 따르고 무역블록의
결성을 배제하도록 되어 있어 무역자유화추진을 위한 협상의 길은 실질적
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역자유화 추진의 방법론을 놓고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과 동아시아지역국가들 사이에 첨예한 의견대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즉 전자는 NAFTA와 같은 특혜적 자유무역지대의 결성을 통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의 시장접근을 강화하는 동시에 역외의 EU에 대한 견제력을 발휘할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후자는 무역자유화의 속도와 범위를 각국 정부가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것을 요체로 하는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를 지향하고 있다.

금년들어 APEC에서의 무역자유화 논쟁이 활발해진 것은 "2020년까지
역내 자유무역을 실현"할 것을 제안한 APEC 저명인사그룹(Eminent Persons
Group)의 보고서에 기인하는바 크다.

오는 15일 모이게 되는 APEC지도자회의는 이 보고서의 권고내용에 의거,
무역자유화에 관한 APEC의 비전을 밝히게 될 것인바 우리나라로서도 주요
쟁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립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내무역자유화 실현이라는 목표에 망설일 이유가 하등 없으며
18개국 지도자들 역시 무역자유화추진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관심사는 APEC가 EPG가 권고하는 바대로 무역자유화를 위한 협상에
돌입할수 있는지 여부라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APEC가 협의체단계에서 자유화협정에 기초한 협상기구로
이행하는 것이 중국 ASEAN등지의 시장확대를 위해 유리하겠으나 개개회원국
이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는 현실에서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겠다.

오히려 아태지역에서의 안정된 협력관계틀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APEC틀 안에서 성취가능한 목표의 수립을 위해 역내의 다양한 이해를 조화
수렴하는 역할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미국등 동아시아지역밖의 회원국들이 동아시아지역
협력모델의 특수성을 이해할수 있도록 돕는 한편 동아시아지역의 고도성장의
다른 면, 즉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선진국들과 동아시아지역 국가들간의
만성적무역불균형과 그로인한 무역마찰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것이다.

둘째, 역내 선진국과 개도국들이 일방적 요구보다는 호혜적 양허를 주고
받는 방식으로 구체적 협력성과를 이루어 나감으로써 중.장기자유화 진전을
위한 기초를 다져나갈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선진국들은 개도국의 주요관심사항이라고 할수 있는 기술이전,
인적자원개발, 산업구조조정프로그램, 인프라 개발, 중소기업진흥등에
대개도국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개도국들은 무역및 투자자유화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무역마찰을 경감함과 아울러 자국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도록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경제의 개방화및 제도 관행의 선진화에 실질적 진전을
이루어 나가야겠다.

우리나라의 대외경제협력이 실효를 거두고 APEC내에서 중간자로서 역내
경제통합의 촉매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외공신력의 확보가 시급한
과제가 아닐수 없다.

지난날 우리 경제가 개도국으로서 누리던 프리미엄이 더이상 용인되지
않는 현실속에서 우리국력에 걸맞게 역내 무역및 투자자유화의 견인차역할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