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단횡단을 하다 경찰에 적발되어 딱지를 떼는 부끄러운 일을 당했다.

처음에는 좀 봐달라고 말하다 그런 내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딱지를
그냥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집앞 도로에서 교통사고, 특히 어린이들의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
하는 점을 감안하면 나의 행동은 한아이의 아빠로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을 감출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은 주민들이 늘 무단횡단을 하도록 되어 있다.

도로 맞은편에 가려면 100m정도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되는데다
도로의 폭은 불과 10m가 되지 못하는 거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주거 밀집지역으로서 주민들이 도로를 건너다니며 생활
해야 하는데 저만큼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는 경찰의 눈치를 봐가며 무단
횡단을 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단속자의 입장에서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경찰의 주요한 역할은 우선적으로
"봉사"에 있어야 하며 "단속"에 있어서는 안된다.

"시민의 지팡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경찰은 일반시민들의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고 어떠한 문제의 소지가 발생할때 그러한 문제해결의
중재자요,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1차적으로 부여받고 있다.

주민편의를 무시하고 설치된 횡단보도는 이용하는 시민과 단속하는 경찰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행정당국에 묻고 싶다.

강권으로 기강을 잡으려는가, 아니면 이들이 현행법규를 지키며 살아가게끔
현실에 맞게 제도정비를 할것인가.

강상규 < 서울 마포구 연남동 228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