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학중 < KDI 국민경제연구소장 >


개개인이 지니는 가치나 의식이 사회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어떠한
결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하여 사회과학은 정확한 설명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가치와 의식에서 사회적 영향과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여러가지
요인이 관련되어 있다.

뿐만아니라 그 가운데 어느 한 요인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데 영향력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하여 모든 요인을 통제, 실험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우리의 남아선호사상과 출생아의 남녀
성비와의 관계는 개인의 가치와 의식이 사회 전체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명히 나타내주는 하나의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조화에 깊은 뜻을 둔 하늘의 섭리를 따르면 남녀 성비가 심한 불균형을
이룰 수 없다.

임신과 출산에 인위적인 조작이 없으면 성비는 보통 1백3내지 1백5로
남자의 출생률이 다소 높다.

그러나 유아기에 남자의 연령별 사망률이 여자보다 높아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 남녀의 성비가 비슷하게 되는 것이 인류의 경험적 법칙이었다.

이러한 인류의 경험법칙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성비의 이변이 발생
하였다.

이 땅에는 남아선호사상이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내려왔다.

특히 우리의 혼인관습으로 신랑보다 신부가 서너 살 어리다고 보았을
때 6.25동란기간 출생하여 살아남은 상대적으로 적은 신랑 후보자보다
전후의 다출산기에 출생한 신부 후보자가 훨씬 많은 데서 기인한 신부
후보자의 적체현상은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을 더욱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적체현상은 인구의 연령구조가 피라미드형태로 벌어지는 상황 아래
여자에게 더욱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남아선호사상이 성비의 심각한 불균형이라는 사회현상을 초래한데는
지속적인 경제사회발전으로 의료서비스가 확대되고 불법적인 태아감별과
낙태시술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동안 모든 국민이 산아제한에 적극 참여해온 결과 연령별 인구의 수가
현재의 24세 미만 연령층부터 줄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령별 인구의 감소는 남녀의 나이차를 두는 결혼관습 아래 신랑
신부의 수급관계에서 전과는 반대로 남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태아감별과 임신중절로 인해 나이가 적을수록 남녀의
성비가 크게 기울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 도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신랑과 신부의 나이차가 네살이라고
가정하면 이미 90년에 결혼적령기 남자의 10%가 결혼을 못했고, 2000년에는
15%가, 2010년에는 23%가 신부감을 갖지 못한다는 놀라운 결과가 예상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오늘날 재수생으로 인해 대학입시가 더욱 어려운 것처럼
노총각의 적체현상이 누적되어 21세기초에는 더 많은 비율의 청년이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심각한 성비의 불균형은 앞으로 여러가지 인구학적 경제사회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면의 제약상 크게 두 가지만 짚어보면 신랑이 자기보다 어린 여자와
결혼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신부감을 해외교포나 외국 여성 가운데서 찾게될 것이다.

현재의 국민정서로 보아 외국 여성보다 교포중에서 결혼상대를 찾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만약 21세기에 남북관계가 개선 또는 통일이 되면 남남북녀라는 명분 아래
북한 처녀의 대폭 유입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인도적 관점에서 옳은 대안이 될수 없다.

우리가 보다 잘산다고 북한이나 외국에서 신부감만을 골라오면 그곳에 남은
총각들은 우리의 문제를 물려받기 때문이다.

또한 남아선호로 인한 가임여성의 감소는 21세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의 예측규모를 하향조정케 하며 그 시점도 앞당기게 한다.

본연구원에서 85년에 발간된 "2000년을 향한 국가장기발전구상"은 2030년께
남한의 인구가 5천6백만명으로 최대치에 달하고 그 이후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최근 통계청의 추계에 의하면 2020년께 약5천만명에 이르고
그 후 급속히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급격한 인구의 구조적 변화는 이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력부족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에 따른 산업구조의 조정이 더 빨라져야
할 필요가 생긴다.

또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학정원의 상향조정은 미래에 대학의 과잉팽창
문제를 유발하고 지금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노인문제가 더욱 두드러져
큰 사회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술한 바와 같은 심각한 성비의 불균형은 이미 기정 사실로서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주어진 문제의 심각성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최선의 대처방안을 미리 모색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우선적으로 시급한 일은 낡은 남아선호사상을 하루속히 버려야 할 뿐
아니라 태아감별에 의한 임신중절이라는 비인도적이고 불법적인 행태가
근절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 관련부처는 태아감별과 임신중절이라는 불법행위를 국익의
차원에서 철저히 단속하여 엄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개인적으로는 비록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의식이라 하더라도 지나칠 때는 사회 전체에 엄청난 문제를 유발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부담이 매우 크다는 교훈을 깊이 새기는 일이다.

우리가 지닌 가치와 의식은 그 변화가 늦으나 그것이 결과하는 사회적
변화는 더 빨리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경제사회발전과 걸맞는 의식개혁의 여러가지
과제를 심도있게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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