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내년의 단체장과 지방의회선거가 맞물려 벌써부터 물밑작업이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정치판에서는 나름대로 탐색전이 벌어지고 출마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다.

선거는 민주사회의 축제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진정 우리는 지방시대를 준비해 놓았는가.

단체장을 뽑고 또 지방의회를 만들면 지방시대는 저절로 오는것인가.

저절로 지방주민들의 의사에따라 저마다 특색있는 개발이 이뤄질 것인가.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준비할 것이
많은데, 그리고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안타깝기만하다.

모두가 의욕만 앞서고 있다.

고작 특정 도시 면적 넓히기가 준비의 전부는 아닐것이다.

누군가 할말은 하고 필요한 곳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지방자치제에는 순기능도 많은 만큼 역기능도 많다.

순기능이라면 지역주민의 여론을 반영하고 윗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
주민들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체계라는 것이다.

역기능이라면 지역간 격차의 심화, 행정의 비능률, 지역이기주의의 팽배
등이 예상된다.

순기능을 살리고 역기능을 순화시키기 위한 제도개선이 논의되어야 한다.

지방시대란 냉정한 경쟁과 책임경영의 시대다.

지금까지는 중앙에서 나누어 주고 다독거려주고 키워주었다.

가령 각종 지역사업은 중앙에서 금긋고 계획도 세워주고 재원도 마련해
주었다.

중앙이 지방에 베푸는 시혜처럼 생각되어 왔다.

앞으로는 지방 스스로가 입맛에 맞도록 추진할 것이다.

권한만큼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제도대로라면 지방이 나름대로 일을 할수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못하다.

아직도 돈과 힘은 중앙에 몰려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중앙과 지방과의 역할분담이다.

어느 정도까지 자치를 허용할 것인지 아무도 분명히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광역과 기초단체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지도 논란이 많다.

나라마다 시스템도 다르다.

우리는 일본시스템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일본의 도쿄도 시스템은 광역행정이고 구단위 기초단체의 성격은
미약하다.

일본은 주로 관료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치인들이 먼저 뛰고
있다.

지방자치를 하려면 지방이 일을 할수있는 방향으로 일단 중심을 잡아
주어야 한다.

재원의 분담도 이뤄져야 하고 힘의 분산도 이뤄져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세제개편이 이루어지고 자치단체의 단계에 따라 알맞는
수준의 재정자립도가 설정되어야 한다.

필요하면 재원발굴도 허용해야 한다.

현재 자치단위별 자립도 편차의 경우 직할시는 자립도가 너무 높아 중앙의
컨트롤이 힘들고 기초단체는 너무 낮아서 실질적인 자치행정이 힘든 실정
이다.

그런데 중앙은 힘의 분산에 인색하다.

둘째 자치단체의 조직이나 인사제도도 서로간에 명확하게 정비되어야
한다.

기초와 광역단체간의 위계질서가 희미해질 것이므로 당연히 책임과 의무가
달라질 것이다.

또 직업관료제도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체장이 일할수 있는 팀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단체장이 임명할수 있는 별정직을 늘려야 한다.

지방행정에 필수적인 것은 정보와 예산과 사람이다.

이것이 중앙에 비해 너무 낙후돼 있다.

지방공무원제도를 확립하는 동시에 중앙의 정보와 예산과 능력을 나눠
가질수 있는 인사교류제도가 보완돼야 한다.

셋째 중앙과 지방간의 행정분담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간의 조정을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

오늘날과 같은 지구촌 사회에서 우리의 행정구역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도로나 상수도 또는 쓰레기소각장을 만들어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런데 통상 이런 것들이 집단이기주의에 부딪치면 표류하기만 한다.

지금 우리의 상황을 70년대 일본열도개조론이 나타날 때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일본은 지방 개발열기에 휩싸였었다.

우리도 아마 내년부터는 각 지방에서 나름대로의 개발욕구가 여러 형태로
분출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서로 조정하여 효율적으로 추진할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중앙에서 부산권 아산권등 광역계획을 서두르고 또 지역발전계획제도
를 만드는 것도 본격적인 지방시대로 들어가기 전에 광역사업의 틀을 잡아
놓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 응당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될수 밖에 없다.

모든 지방이 고르게 발전한다면 구태여 중앙정부의 개입이 필요없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낙오자를 부추겨 주고 격차를 컨트롤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 지방은 일을 할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중앙은 지원하고
컨트롤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같은 사항들이 하루바삐 검토되어서 필요한 것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제화하거나 고쳐야 하지 않을까.

지방시대로 가는 열차는 막 떠나려 하는데 준비가 너무 미흡하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