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가 직접 나가사키로 찾아온다는 전신 통고를 받자 오쿠마는
쓰구미치와 대책을 협의했다.

이미 선발대가 떠나가버린 터이니,별다른 대책이 있을 턱이 없어
오쿠마는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쓰구미치는 마치 목이 달아날 것을 각오한 사람처럼 말했다.

"오쿠보 도노가 도착하기 전에 제2진을 출발시키겠소"

"뭐라구요?" 오쿠마는 어이가 없었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잖아요. 날아간 화살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으니, 또 쏘는 거죠 뭐"

"나는 모르겠소. 당신이 책임을 지시오"

"염려 말아요. 오쿠마공에게 문책이 돌아가도록 할것 같소? 내가 단독
으로 한 일인데." 문관은 무관 앞에 그저 입맛이 쓸 따름이었다.

쓰구미치는 다니,아카마쓰 두 지휘관과 상의를 하여 이번에는 네척의
군함에 병력의 거의 전부를 싣고 출항하기로 했다.

대만 정벌군의 주력부대가 그들 두 지휘관의 인솔하에 오쿠보가 도착
하기 전에 출진해버리는 것이었다.

그 주력부대가 나가사키항을 출발한 것은 5월2일이었다. 그 이튿날
해질녘에 오쿠보는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쓰구미치는 오쿠마와 함께 오쿠보를 항구가 눈아래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요정으로 안내했다. 저녁겸 주연을 베풀려는 것이었다.

명령 거역행위를 해놓았으니,그런 문제를 딱딱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술을 마시며 얘기하는게 훨씬 나을것 같았던
것이다.

요정의 특실에서 성대한 요리상을 앞에 놓고 잔을 받은 오쿠보는 활짝
열린 방문 밖으로 항구의 불빛을 내다보며, "나가사키의 항구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니까" 하고 말했다.

오쿠보의 입에서 뜻밖에 그런 기분좋은 듯한 말이 나오자 바짝 굳어져
있던 쓰구미치는 적이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첫 술잔을 비우고나서 그는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넣으며 오쿠보를
향해 정중하면서도 정감이 어린 그런 목소리로 불쑥 입을 열었다.

"각하, 각하를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예기치 않은 말에 오쿠보는 약간 멀뚱한 표정으로 쓰구미치를 바라보더니,
"그래, 좋아. 그렇게 부르라구. 나는 자네를 쓰구미치라고 부를테니까"
하고 히죽 웃었다.

오쿠보는 마흔다섯살이었고,쓰구미치는 스물여덟살이니,열일곱살
차이였다.

어린 시절 고향 가고시마에서 쓰구미치는 자기 형과 각별히 친한
오쿠보를 늘 형님이라고 불렀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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