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무역적자를 줄여보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매고 있다.

김철수상공자원부 장관이 21일 종합상사 사장단을 긴급 초청해 "수출
확대에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날 간담회에서 상사사장단은 8개사의 올 수출목표를 당초 목표보다
16억달러 늘린 4백16억달러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화답"했다.

상공자원부측도 올 우리나라의 전체수출목표를 9백35억달러로 고쳐
잡았다고 밝혔다.

연초 9백억달러로 제시됐던 전망치가 <>6월 9백11억달러 <>7월 9백15억
달러 <>8월 9백20억달러로 잇달아 수정되더니 또다시 "제4차 상향조정"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수출목표"라는 말을 쓰지않고 있다.

국제화시대에 걸맞지않는 "관리무역정책"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정부로서도 수출을 "관리"할 수단을 놓아버린지 오래다.

그저 "전망치"를 연이어 높여 제시함으로써 업계의 수출무드를 독려
하겠다는 정도다.

정부로서도 그렇게나마 장구를 치지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딱하게
돌아가고 있다.

연초 수출목표를 9백억달러로 제시했던 것은 올 수입도 "그 정도"에
그칠 것이란 예상에 따른 것이었다.

통관기준상의 수출과 수입이 똑같아지면 국제수지(BOP)기준으로는
20~30억달러의 흑자를 낼 수 있으리란 낙관론도 덧붙였었다.

그러나 수입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수직 상승세를 거듭
해왔다.

6월이후 9백20억달러,9백50억달러로 고쳐 제시됐던 올해 수입예상치가
21일의 종합상사 사장단 간담회석상에서는 "9백90억달러 이상"으로
또다시 바뀌었다.

실제로 9월중 수출이 83억4천만달러로 작년동기보다 16.1%늘어나는
"분발"을 보였지만 수입은 무려 26.4%가 증가한 88억달러를 기록했다.

수출이 달음박질한다면 수입은 "펄펄 날고있다"고 해야할 판이다.

9월까지의 올수출누계는 6백74억달러,수입누계는 7백30억3천만달러로
무역적자가 56억3천만달러에 달하고있다.

이제 정부의 무역수지 관리타깃은 "국제수지기준 흑자달성"은 커녕
"적자폭 최소화"로 옮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수입을 억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되도록
수출을 최대한 늘리자는게 정부가 내놓는 "해법"이라면 해법인 셈이다.

그러나 올들어 과천경제팀이 추구해온 거시정책기조를 찬찬이 뜯어보면
이런 정부의 "수출총력증대"란 구호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 "뒷북"에
지나지 않는지가 명확해진다.

아울러 "우선 올 무역수지나 잘 관리해보자"는 식의 전시행정적인 발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런 의문은 무엇보다도 전임 정재석팀은 물론 현 홍재형팀이 확고하게
추진하고있는 "안정중시"정책에서 비롯된다.

통화관리와 물가안정을 우선적인 정책목표로 내세우고있는 현 기조아래서
나타나고있는게 원화환율의 고율절상추세 "방치"와 주력품목의 "내수우선
배정"이다.

단적인 현상이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고있는 원화절상과 이날의 "간담회"
에서도 지적됐듯이 철강 유류등 품목의 국내공급 우선원칙에 따르는
수출물량배정 축소추세다.

경제팀의 이런 처방은 "안정우선이냐,수출지원이냐"하는 두 측면간의
트레이드오프(정책상충)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고있다.

이를테면 정부는 "수출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안정기조를 우선 다지겠다"
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여기에 하반기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국제원자재가격의 상승으로 국내
수출업계의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수출무드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고
있다.

고국제금리-고환율-고원자재가격이라는 이른바 "신3고"가 수출업계의
목줄을 죄고있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는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등 자생력을 갖춘 품목들은 "과천"
의 선택에 아랑곳 없이 수출호조를 지속하고있는 반면 섬유 신발 철강
컨테이너등은 극도의 부진에서 헤매게 하는 "수출경기 양극화현상"을
초래하게 된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일단 "안정우선"을 선택했다면 당장의 무역적자를 감수할
자세가 돼있어야 하는데,"무역수지도 좋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조선등 일부업계에 내년초로 예정된 선박인도(수출)기일을
연말로 앞당겨줄 것을 종용받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 이학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