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덕 <보험개발원 책임연구원>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구제제도로서
책임보험제도를 널리 활용하고 있다.

다만 책임보험제도의 담보범위는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무과실책임주의에
기초를 두고있는 스웨덴및 뉴질랜드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과실책임주의가 그 기조를 이룬다.

특히 두차례의 배상책임보험의 위기상황을 겪은 미국의 경우 의료배상
책임보험제도를 도입할 예정인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 의료사고와 관련된 배상책임보험은 크게 병원배상책임보험과
의사배상책임보험으로 구분되며 외과의 내과의 소아과의등 전문진료
과목별 위험구분의 세분화,간호사 의료기사등 의료관련인및 혈액은행에
대한 담보증권의 별도개발및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요율구조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의료관련 배상책임보험은 사회전반적인 소송과다
풍조와 배상금액의 고액화경향등으로 손해율이 극히 높아져 보험회사가
인수를 꺼리거나 의료기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보험료를 요구하여
많은 병.의원들이 보험구입에 애로점을 겪거나 심지어 보험증권을 구입
하지 못해 병원문을 닫는 사례까지 발생하는등 여러가지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의사회를 통한 계약창구의 단일화,의료분쟁심사기구의
공정화가 구축됨에 따라 비교적 건실한 운영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와같은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보사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
법안제23조의 규정에 의하여 도입할 예정인 의료배상책임보험제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적극 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외국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의료의 수준및 그 난이도에 따라
다원화된 요율체계와 요율수준을 갖출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의료배상보험은 보험업계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인데 비해
보사부의 입법안은 보험회사의 무한책임보상을 규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
하여 적정.타당한 보험요율수준의 결정이 대단히 중요하며 단계적으로
손해율을 바탕으로 한 경험요율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다만 무한책임제도는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는 흔치 않으며 손해액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보험회사측의 적정요율산정에도 큰 장애로 작용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둘째 국민의 의식수준이 점차 높아져 앞으로 비경제적 손실에 대한
피해자의 배상요구가 급진적으로 늘어날 것이 예상되며 더욱이 무한
보상을 규정하고 있는 동법(안)에 비추어 이에대한 법적인 사전준비
(소득손실,의료비등 경제적 손실외의 비경제적 손실에 대한 명확한
보상규정이 필요)가 충분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비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예:정신적고통에 대한 보상,
징벌적 의미의 배상등)이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배심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의료배상책임보험의 정착에 주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어 각 주정부에서 이에대한 제한법안을 마련중에 있다.

셋째 보험약관상의 담보조항과 면책조항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명확하고 평이한 용어로 구성되어야 향후 약관해석을 둘러싼 불필요한
분쟁을 미리 방지할수 있다.

넷째 보험약관상 의료인의 사고방지노력과 의료의 질적향상을 위하여
가해자가 손해액의 일정금액을 부담하는 자기부담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자동차보험에서의 소액공제제도와 같이 일정금액이하의 의료사고에
대하여는 의료인 스스로 부담케 하거나 보험금의 일정비율을 의료인이
부담하게 하는 제도등이 그 예라 할수 있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유한책임제도의 도입으로 일정한 보상한도액 이상의
의료사고손해에 대하여는 의료인이 부담하게 함으로써 의료인에 의한
사고예방노력을 더욱 제고시킬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이번에 도입될 의료배상책임보험의 빠른 적응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보험계약의 단체체결,손해사정기구의 단일화등 초기정착단계에서
부가율(사업비)의 삭감노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섯째 의료사고가 의료인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인 경우 형법상의 제재
와 더불어 정부의 강력한 행정적 규제조치(면허정지,과태료처분등)가
수반되어야 의료분쟁의 만성적인 악순환을 방지할수 있다.

의료배상책임보험제도는 의료분쟁시 환자에게 공정하고 충분한 보상
조치를 신속하게 취함으로써 의료인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진료에
임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 제도의 성패는 위에 열거한 요인들외에 궁극적으로 환자와
의료인과의 신뢰회복,즉 지금까지의 불신 갈등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믿고
의지할수 있는 동반자관계의 정립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며 이를 위하여
정부 의료단체 보험업계와 국민모두의 공감대형성이 가장 중요한 사안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