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핵협상은 우리가 우려했던대로 한국의 의사는 거의
무시된채 "선경수로건설 후사찰"로 사실상 타결되고 말았다.

그동안 한.미양국은 과거핵규명을 위한 특별사찰과 한국형경수로의
채택없이는 북핵문제가 해결될수 없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같은 사전약속을 어기고 11월 중간선거와 내년5월의
핵확산금지조약(NPT)연장만을 의식해 북한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만것이다.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국제적 신의를 저버린 클린턴 행정부는
물론이거니와 국제 정치무대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국제
공조라는 이름아래 우왕좌왕해온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도 다같이
실망을 금할수 없다.

북한의 완전한 핵투명성 규명을 위해 우리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특별사찰이 북한에 제공될 경수로1호기 착공후 주요기자재의 반입전까지로
늦춰지게된 것은 특별사찰을 무효화하려는 북한측 전략에 말려든
것으로 볼수도 있을 것이다.

주요기자재 반입시기는 현시점으로부터 4~5년뒤가 될것인데 그 기간동안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면 한국은북한의 핵개발을 돕기 위해 경수로건설을
지원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해석까지도 나오고 있다.

경수로도 한국형이라고 못박지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컨소시엄테두리
내에서 한국이 재정과 기술적 지원을 주도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고있는 남북대화재개에 관한 논의 역시 "한국
달래기"용의 수사적 의미밖에는 부여할수 없다.

애초부터 북.미협상에 영향력을 미칠 적절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던 우리 정부는 이번에도 합의사항을 추인할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얻은것 없이 돈만 댈 판인 정부의 곤혹스런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는 먼저 북핵정책과 대미외교의 시행착오에 대해
국민앞에 솔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국민을 이해시키지 못하고서는 경수로 비용을 염출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 우리 국민의 불만과 우려를 미국에도 전달하고 그에 따른
후속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에 있어 북핵문제는 근본적으로 통일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라는
기본시각이 그 후속대책의 기조가 돼야 함은 물론이다.

경수로지원의 주도적 참여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술진의 자유로운 출입조차 보장받을수 없는 형편이라면 그런
치욕적인 거래에 앞장설 이유가 없다.

실망스런 이번 북.미 협상결과가 우리 국민모두에게 대북및 대미관계의
환상적 기대에서 깨어나는 계기라도 될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