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발표 : 경제선진화의 역사적 전망 ]]]

김영호 < 경북대 교수 >

한국경제의 선진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폴 케네디 교수는 21세기에 가장 희망적인 국가로 한국 스위스 그리고
일본을 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은행(IBRD)의 전망자료를
근거로 2020년에는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이 세계 7위로 프랑스보다 앞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오는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으로써 선진국에 들어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 신경제 5개년계획이 끝나는 97년 선진경제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96년께는 OECD에 멕시코 체코등도 가입하여 회원국가가 26개국이
될 전망이라 회원국이 됐다고 해서 선진국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사실상 G7이 이끌고 있으며 또 G7에 못들어갈지라도 각
산업분야별로 7위안에 들어갈수 있어야 그 산업분야의 선진국이라 할수
있고 선진국에 들어가는 산업분야가 국민경제의 주류를 형성해야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할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96년 선진국 진입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말레이시아가 2020년을 선진국 진입의 해로 설정하고 있다면 한국은 그보다
앞서 21세기초 정도로 잡을수 있다.

2001년은 다소 빠른 느낌도 없지 않으나 지금 세계경제가 엄청난 전환기를
맞고 있고 이 전환기에 선진국에 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 2001년은
상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선진국 진입의 해로 삼을수 있다.

앞으로 6-7년간의 전환기에 기회를 놓친다면 그 다음에는 시간이 흐른다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비젼2001으로 88올림픽때처럼 전국민의 에너지를 집결해 상황을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한국은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했다고 한다.

문턱국가 혹은 문지방국가론은 경제를 집에 비유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라는 집에 들어가 마당국가(개발도상국)의 지위를 거쳐
마루국가(중진국)가 되고 이제는 방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문턱국가 즉
신흥공업국이 된 것이다.

문지방을 넘어 방안으로 들어가면 선진국이 되는 것인데 문제는 문지방을
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역사상 많은 국가가 이 마의 문지방을 넘지못하고 좌절을 경험했다.

현재의 선진국이 과거 선진국에 진입했던 과정을 살펴보면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을 하나 찾을수 있다.

19세기초 영국은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혁명을 주도, 선진국이 되었고
19세기 중엽 미국 프랑스 독일등은 기존 철강업 화학공업등의 새로운 산업
물결을 타고 선진국이 되었다.

20세기이후 일본도 기존의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중화학공업의 발전뿐아니라
전후 본격적으로 산업화된 전기전자산업의 물결에 동시적으로 진입함으로써
선진국이 되었다.

그렇게 보면 한국의 선진국 진입도 섬유산업등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중화학공업등 자본집약적 산업 그리고 전자 자동차등 기존산업의 발전에다
현재 태동기에 있는 정보 생명공학 신소재산업등의 새로운 산업물결을 타고
동시적으로 진입해야 가능하다고 할수 있다.

중화학 전자산업등에서 선진화되고 있는 한국은 멀티미디어나 정보인프라를
비롯한 정보산업과 생명공학 초전도등 신소재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신산업혁명의 물결, 특히 초기의 상승물결을 어떻게 잘 탈수
있으냐가 선진국 진입의 관건이다.

초기국면은 96년부터 5-6년간이 될 것이다.

2001년을 선진국 진입의 상징적인 해로 설정한 것도 이같은 신산업물결의
초기 상승국면을 결정적인 기회로 보기 때문이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정보화는 반도체와 같은 소재산업이나 정보기기산업
정보서비스산업 정보유통산업등의 발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농업 공업 서비스업 안에 정보적인 직종이 늘어나면서 그 자체가
정보화되는 경향을 포함한 것이다.

이 점에서 정보산업의 강화는 기존산업의 강화로 연결된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중화학공업을 거쳐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산업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추종국가에서 도전국가로 변신해 왔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등에서는 도전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도국가로 떠올라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한국경제는 투자주도형에서 혁신주도형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슘페터형의 혁신, 즉 새로운 제품 기술 조직 시장혁신등이 절실히 요청
된다.

이것은 정보화물결에의 동시적 진입을 달성하는 내적요건이 된다.

이는 선도기업이 대기업형에서 전문기업형으로, 다시 중소기업형을 거쳐
벤처비즈니스형으로 바뀌어가는 경향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된후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가진 확고한
산업공민으로 자리잡은 산업민주주의를 통해 산업의 안정과 발전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발로 걸어야 한다.

이것을 이윤과 임금의 상호압박이라고 설명해도 좋다.

과거 한국은 자본논리에 의해, 북한은 노동논리에 의해 걸어왔으나 이제
한국은 두발로 걸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의 60-70년대의 고임금이 기존산업의 공동화를 가져왔다.

이것이 결국 80년대의 정보화물결을 불러왔다.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의 고임금이 산업의고부가가치화와 정보화를 가져온
것이다.

반면 홍콩은 중국의 저임금에 의존함으로써 기존 산업의 가격경쟁력은
확보했으나 정보화의 길로는 나서지 못했다.

한국의 경우도 고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고생산성으로 연결시키고
고부가가치 및 정보화의 촉진으로 연결시키는 메커니즘이 문제이다.

자본과 노동의 두다리로 걸어가는 단계에서 한국은 이윤과 노동이 상승
작용을 하는 메커니즘을 정립하는 것이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고 할수 있다.

이를 위해 자본측과 노사가 연대하여 회사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고이윤과 고임금의 일정부분을 사내유보시키는 형태로 기술공동체
내지 연구개발(R&D)공동체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대기업과 종소기업간 그리고 산업과 소비자간에도 형성할수 있는
시스템일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사회경제적민주화로 심화시키면서 산.노.학.관의 신공생
체제의 형태로 선진국진입의 내부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외적으로 기존선진국의 진입방해를 뛰어넘을수 있는 돌파전략만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초대를 받을수 있는 초대적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경제는 지금까지는 문을 닫고 산업화를 했으나 이제 문을 열고 나가
폭풍속에서 선진화를 이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