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임은 90년 가을에 시작했으니까 네돌이 지났다.

제창자는 박정수(조달청) 이수영(내무부) 양씨이다.

따라서 자동케이스로 공동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멤버는 모두 14명.

70년대 전반기 동경의 대사관 근무자들이다.

그래서 속칭 "아자브 모임"이라 한다.

처음에는 아타셰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너무 선을 긋는것 같아서 정통
외교관 윤하정 김우상(외무부) 양씨를 끌어안았다.

모이는 장소는 인사동 T한식집이다.

지난해에는 회원중 국회의원 고 윤항열씨(농림수산부)를 애석하게 잃었고
최근에는 황해룡씨(과기처)가 멕시칸 프로젝트로 모임에서 이탈했다.

또 지난 1년동안 조영길씨(해군)가 캐나다 프랑스로 프랑스어 수학을 위해
떠나 있었으나 곧 귀국하게 된다.

또 최근 우연한 기회에 이용훈씨(외무부)가 새로이 입적했다.

이 모임의 성격은 생수와도 같다.

달지도 쓰지도 않고 소금기도 없다.

물론 중금속으로 오염되었거나 첨가물도 섞여 있지 않다.

무색무취의 투명한 공직생활을 거친 인사들이라 간단한 점심식사와 함께
격조높은 담소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심유선(육군) 최창락(경제기획원) 황철수(교육부) 주홍장(수산청) 제씨속에
필자(농림수산부)도 끼어 있다.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서 산전수전을 겪은 맹장들이므로 시시껄렁한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언제나 격조높은 위트와 유머가 섞인 화제속에서 서로 절차탁마하는
대화가 벌어진다.

하지만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초리는 모두 매서운데가 있다.

서울지하철공사장 한진희씨(노동부)의 노사분쟁경험담에는 동정의 눈물이
글썽하기도 했다.

한월친선에 골몰하는 박성근씨(경제기획원)가 소개하는 최근의 베트남
재건상에는 지난날의 경제개발 역군들을 회상의 추억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때로는 화려하면서도 때로는 구저분한 외교의 무대에 서서 더욱이
아타셰들에게는 생소하고 서툰 일속에서 헤매면서 나름대로 각 분야에서
활약해온 올드 랭킹 디플러매트들이 간소한 점심식사자리에 모이는 일은
어떤 다른 모임보다도 마음 편하고 우정이 솟구치는 자리로 자처한다.

더러 이 모임에 가입을 희망하는 다른 동료들도 있으나 T한식집의 가장 큰
방이 12명이면 꽉 차는것 때문에 더 수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갖는점이
유감스럽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