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성 < 에너지경제연구원장 >

석유부문과 같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산업은 그 가격제도의
변화에 따라 국내산업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광복이후 석유가격 변천사는 우리산업의 발달사와 연결되고 있다.

산업이 유아기에 있을때 석유가격은 정부의 완전한 통제와 보호아래 결정
됐다.

그후 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산업규모가 커지자 정부의 석유
가격 정책은 다소 탄력적으로 운영됐고 일부 석유제품 가격들은 정부의 손을
벗어나 자율적으로 결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선 대부분의 석유가격이 여전히 정부의 관리아래
움직인다.

국내 석유산업 자체에서도 경영의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면서 이에 걸맞도록 가격관리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가고 있다.

석유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정유부문과 석유제품 수출입의
시장기능이 활성화되고 정유부문과 유통부문의 연계가 추진돼야 한다.

국내 석유산업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과제는 정제설비의 확충과 고도화에
필요한 재원조달문제이며 이것도 역시 현행 가격정책의 개선으로 풀어야
할것이다.

산업규모의 팽창과 함께 급증하는 석유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93년부터 97년까지 하루 82만6천배럴 정제규모의 설비가 중설돼야
하지만 이에 소요될 투자비는 약 7천74억원에 달한다.

석유수요구조의 경질화 추세와 환경규제강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같은
기간에 하루 33만5천배럴규모의 중질유 분해설비와 탈황설비의 증설이 요구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3조6천1백80억원이라는 재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석유산업에서 필요한 막대한 재원의 조달문제는 현행 가격관리
정책이 변화되지 않고는 원활한 해결이 어렵다.

우리나라 유가관리정책은 광복이듬해인 1949년부터 시작되었다.

정부는 유가의 전면적인 자유화를 위한 준비단계로 올 2월부터 국제 시황의
변화와 직접 연계하는 유가연동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에 의해 휘발유와 등유 경유 벙커C유의 가격이 원유도입가격과
환율에 연계되어 매달 변동되어 오다가 이번 9월부터는 국제석유시장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가격에 연동되도록 다소 개선됐다.

우리나라 유가관리제도의 특징중 하나는 정유회사의 이윤을 정부가 관리
한다는 점이다.

지난 86년부터 정부는 원유도입가 변동에 따라 변하는 정유회사의 이윤을
일정수준으로 규제하기 위해 사후정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윤이 정부가 정한 수준이상으로 과대하게 나타났을때는 그 차익을 정부가
회수하고 손해가 났을때는 정부가 이를 보전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유회사 이윤관리는 유가가 통제되고 있는 현행 제도상 어쩔수
없다해도 원가절감에 대한 인센티브의 부재로 정유회사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일본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들은 유가를 자유화
하여 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들은 우리와 같은 최고가격제운영, 연동제의 도입과정을 거쳐
자율화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도 유가연동제가 실시되고 있는 기간동안 달성해야할 정책과제는
연동제를 석유가격자유화를 위한 준비단계로 삼아 석유산업의 자율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유가정산제를 폐지, 정유회사의 경영합리화노력을 촉진
시키고 동시에 제반시설투자와 지출에 대해 보다 신중히 결정하도록 유도
해야 한다.

석유정제시설증설에 대한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시설투자를 정유회사의 자율결정에 맡김으로써 시장기능에 의해 국내 정유
산업의 규모가 적정수준에 이를수 있게 해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국내시장에서의 경쟁촉진을 위해 석유제품의 수출입과 정유
부문의 신규진입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석유제품의 가격구조(정유회사의 세전공장도 판매가격 기준)를 개선하여
국제석유시장의 가격구조에 접근시키는 것도 긴요한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가격구조는 외국과 상이해서 경유의 가격수준이
휘발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따라 공해유발부담이 큰 경유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왜곡현상을 낳고
있다.

또한 정부는 공급자 가격(정유회사 판매가격,대리점 마진,주유소 마진)
보다는 최종소비자 가격위주로 가격관리를 해나아갈 필요가 있다.

석유제품가격의 자유화를 시행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격정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즉 국내석유제품 가격을 물가관리 민생안정 경쟁력 지원등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정부의 규제아래서는 국내 석유공급업체들은 자기 회사의 발전만을 추구
하면 되었고 국가경제적인 차원에서의 통합조정은 정부가 수행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가 폐지되는 상황에서는 그 공급업체들은 자기 회사의
발전을 추구하는 동시에 국가경제적인 차원에서의 통합조정기능도 수행
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그들은 석유산업이 태동한이래 지금까지 이러한 통합조정기능을 수행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요청은 감당하기에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향후에는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내 석유업체들은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석유산업의 발전을 위한 전략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한국석유산업이 국제화되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시장감시기능과 보완 기능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종소비자에 대한 가격과 시장참여자간 거래가 적정하게 이루어 지는지
면밀히 감시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과 석유시장 정보수집체제의
확립이 요구된다.

석유제품의 비축기능도 강화하여 국내 석유시장이 수급균형을 유지하고
가격안정을 이룰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시장에서의 공급불안과 국가안보상의 비상시에 적극 대처할수
있는 체제도 갖출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