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길 <숭실대 중기대학원장>

지존파에게 희생된 중소기업사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회사가 부도로
쓰러질것을 걱정한 유서아닌 유서가 공개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했다.

중소기업은 이런저런 이유로 도산의 위협을 받고있다.

예사일이 아닌데도 중소기업의 도산이 흔하다보니 예사일처럼 느껴지고
일반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올들어 지난 8월까지 7,000개의 중소기업이 쓰러졌다. 또 지난 8월의
어음부도율은 한국은행이 부도율을 집계한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올해의 부도기업체는 사상최대의 기록을 세운
92년(1만769개사)수준을 웃돌것 같다.

경쟁에서 밀리는 기업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현재 중소기업의 부도가 늘어나는것을 경쟁력을 잃은 한계기업의
퇴출로 보는 시각이 있다.

부도업체수보다 신설업체수가 많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부도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적절한 지원을 하면 충분히 성장할수 있는 기업이 쓰러지고
있다면 이를 한계기업의 퇴출로 볼수있을 것인가.

본격적인 국제경쟁시대가 열리고 있어 정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중소기업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옳다. 그러나
자유경쟁이라해서 헤비급과 플라이급 선수를 맞붙이지는 않는다.

힘이 약한자에게 힘을 기르고 경쟁에 버틸 여건을 마련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없이 이제 자유경쟁시대라고 외치면 힘없는 중소기업은
쓰러질수밖에 없다.

경쟁만 시키면 모든 문제를 풀수 있다는게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범할수 있는 오류다.

문제가 있으면 법을 만들어 다스리면 된다고 보는 일부 법률전문가들의
오류와 다를바 없다.

중소기업육성정책이 없었던적이 없고 중소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은 적도 없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맞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다른 복잡한 이야기를 할필요도 없이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고 그 대금을 제때에 받지못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무엇하는 조직인가.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고 대가를 받아 이윤을 남기는 조직이다.

더좋은 품질의 상품을 더싸게 공급할수 있는 기업은 성공한다.

그런데 우리의 중소기업은 그럴수가 없다.

중소기업은 현금을 주고 원자재를 사서 제품을 만들어 납품을 해도
제때에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93년3월19일 김영삼대통령은 "신경제로 새도약을"이라는 특별담화에서
중소기업을 살리는데 대기업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자금결제기간을
60일이 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한바 있다.

오죽했으면 법에 정해져 있는 당연한 이야기를 대통령이 당부까지
했겠는가.

그런데도 93년 판매대금의 어음결제기간은 60일이 넘은 것이 91.8%,
90일이상은 71.9%,120일 이상도 24.3%에 달했다.

올해의 사정도 개선되지 않았다. 90일 넘는 어음은 은행에서 할인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은행에는 여유자금이 있어도 담보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대출을 꺼리고
은행 스스로 증권시장에서 주식투자로 재미를 보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중소기업이 홀로서기를 할수 있는가.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극에 달하면 금융실명제실시때처럼 중소기업지원
자금을 많이 푼다. 그럴때는 가뭄에 단비나 다름없다.

그러다가 물줄기가 일시에 끊어지면 논밭은 또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와같이 중소기업지원은 천수답식이다. 천수답은 제때에 적당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제대로 농사를 지을수 없다. 비가 일시에 쏟아진다해서
그 물을 담아 놓을수도 없다.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가뭄에도 견딜수있는 수리안전답식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관개시설을 해야한다.

중소기업으로 돈이 흘러들어가는 수로를 막아놓고 돈을 조금 풀어보았자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

납품대금지급기일이 며칠만 늦어져도 중소기업지원자금의 효과는
없어진다.

납품대금을 제때에 못받는 기업에 기술개발을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허황된 소리로 들리겠는가.

세계무역기구(WTO)시대를 맞아 가장큰 어려움을 당할 부문은 농업과
중소기업이다.

농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농특세를 거둔다.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중특세를 구상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부도사태는 자금지원을 비롯한 각종지원이 뚜렷한 정책의지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 그때그때의 경제.사회적 여건변화에 따라 이루어지고
정책을 마련할때의 정책의도나 열의가 시간이 흐를수록 식어버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뭄이 한창일때 양수기를 동원하고 지하수를 판다고 법석을 떨다가
비가 내리면 양수기를 팽개치는 정책으로는 가뭄에 이길수 없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물이 흐르도록 하는 수리안전시설은 납품대금지급
기일을 더 단축해서 지키게하고,진성어음은 무조건 할인해주고,중소기업
의 담보능력부족을 보완할 방법을 찾고,기술과 사업성을 중심으로한
신용평가체제를 확립하는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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