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추석 달맞이를 하러 가족과 함께 뒷산을 올랐을 때이다.

소나무사이로 솟아오른 달빛을 맞으며 문득 까마득히 먼 어린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우리 사촌형제들은 저녁을 먹은후 할머니의 무릎을 벤 채, 수십번 되풀이
들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면서도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역시 똑같은
겁먹은 표정을 하고 할머니 가슴에 파고 들곤 했다.

무엇이 그렇게도 우리를 즐겁게 하고 가슴 졸이게 하며 신나게 했던
것일까.

아직도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이 전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나는 국민학교 2학년부터 5학년까지 3년간을 고향인 안동 도산의 산골에서
사촌들과 함께 자랐다.

나의 삶에서 고향에서 지낸 몇년 동안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메마르고 편협된 삶을 살았을까.

할머니의 냄새와 맛이 배어있는 고향은 내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어 나를 풍요롭게 하고 나를 마음껏 자유롭게 날게 한다.

우리는 해방이후 "보릿고개"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우리세대는 일 밖에 모르는,일에 중독되어 있는 일벌레가 되곤 했다.

덕택에 우리는 일차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제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을때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채 깊은 구렁텅이
속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망연자실할수 밖에 없었다.

최근 신문지상을 장식한 끔찍한 살인사건은 제쳐두고라도 예기치 않은
결과에 우리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자녀세대에게 배불리 먹을 음식을 주었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무용도 가르쳤고 우리가 줄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주지 못했다.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을 우리는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빌딩 숲과 아스팔트와 TV속에 갇혀 살고있다.

딱딱하고 차디찬 벽속에 갇혀서 열린 하늘을 보지 못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말랑말랑하고 끈적끈적한 정이다.

불안과 슬픔과 분노까지 봄눈 녹듯 녹여주는 용광로가 필요하다.

그들이 좌절할때 용기를 줄수 있고 절망할때 희망을 줄수 있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

우리모두 닫힌 문을 활짝 열고 맑은 공기를 넣어주자.

우리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남들처럼 살고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한데 이러한 욕구는 무한정한 속성을 갖고 있어서 쉽게 좌절하게 마련이다.

이런때,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잘난사람은 잘난대로 자신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는 열린 가슴이 필요하다.

매를 맞아 아픈 손을 어루만져 주는 할머니의 손길, 삼촌의 위로, 이웃의
이해, 친구의 격려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한 인간 존재의 귀중함을 받아들일수 있는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상처받고 독소가 몸에 차지 않도록 정을 나누어야 한다.

진정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삶의 의미 되살리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보다.

범행을 저지른 "지존파"나 범행대상이 되었던 "야타족"이나 그들 행동의
근원적인 동기는 같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온전한 한인간으로 받아들여주는 정에 굶주린
것이다.

그들 앞에 가로 놓인 차디찬 문 앞에서 그들은 절망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을 "돈이 많기 때문에" "성공했기 때문에"
혹은 "지식이 많기 때문에"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로서,
귀중한 생명을 타고난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나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들의 생명도 귀중함을 새기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더 이상 늦출수는 없다.

우리 삶의 의미를 되살리며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할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