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천체를 달리는 우주공학과 생명체의 유전자를 바꾸는 생명공학
그리고 거리의 개념을 뛰어넘는 정보통신기술등으로 신비롭기만하던
이 세상의 실체들이 하나둘 벗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진리에 접근해간다는 기쁨을 주는 반면 때로는
우리의 꿈과 여유를 앗아가기도해 조금은 쓸쓸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고 또 "제자리 지킴"은 정체라는 이름으로
매도당하는 이 시대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갖고 뒤를 돌아보며 사색의
시간을 갖고싶을때 필자는 낚시가방을 챙겨들곤 한다.

잠시의 사색이 주는 재충전의 상쾌함,바로 그 낚시의 매력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의 낚시에대한 애정은 증권거래소의 낚시동우회인 "한증낚시회"와
함께 이어지고 또 자라온 것같다.

지난 77년 조직된 한증낚시회는 올해로 장장 17년의 역사를 가진
거래소내의 최고령서클이 됐다.

한증낚시회는 당시 상장부의 고창헌부장(퇴직)을 초대회장으로
거래소 전체직원의 10%가 넘는 38명이 회원으로 참여해 출발했다.

출범초기 맹렬조사였던 이한규과장(현 감사)과 박태희과장(퇴직)의
주도적인 역할은 17년 찬란한 역사의 밑거름이 됐다.

한증낚시회의 재미있는 전통은 회장인덕론을 꼽을 수가있다.

출조일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어 낚시자체가 불가능한 때는
물론 조황이 빈약할 경우에도 그 책임은 모두 회장에게 돌아간다.

비나 바람과같은 자연현상이 회장의 부덕 또는 회장 조상들의 음덕이
부족한 까닭으로 간주돼 회장은 당일로 전회원앞에서 사태의사를
표명하게 된다.

이같은 불문률은 여태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17년의 역사중 회장이 현재의 유재성과장까지 포함해 모두
5명밖에 안되는 것으로 봐서는 역대 회장들의 인덕이 얼마나 무던했던가를
알수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바와 같이 낙시의 진수는 "완벽한
준비후의 고요한 기다림"이다.

인생의 철칙인 진인사대천명과 꼭 같다. 특히 기다림이 어려운데 이
기다림을 완성시키는 것이 고요한 상념이라고 할수있다.

따라서 깊은 사색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낚시꾼이 될수없다고
하겠다.

필자도 조력25년이 지난 최근에야 낚시를가면 고기를 잡는 것보다
고요한 상념의 세계가 더좋아지는 것을보면 이제야 겨우 낚시도의
입문단계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