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한 뒤로 사이고는 농사와 사냥을 즐기면서 여생을 이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초기의 생각이었을 뿐,역시 아직 오십도 채 안된
몸이라 벌써부터 그렇게 은퇴할수는 없을것 같았고,또 차츰 그런
생활이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방향을 잡은 것이 교육의 길이었다.

사학교를 설립해서 사쓰마의 청소년들을 교육하여 인재로 만들어
중앙으로도 진출시키고,남달리 뛰어난 영재들은 서양으로 유학을
보내어 장차 이 나라의 큰 재목이 되도록 해야겠다 싶었다.

나라를 위하는 길은 직접 정권을 담당해서 운영해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뒤에서 그렇게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결코 정치에 못지않은,오히려 그
보다 더 중요하고 보람있는 역할인 것 같았던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서서히 사학교의 설립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아직 그런 생각을 가슴에 담아두고,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는데,하야시
에게 처음으로 살짝 내비쳤던 것이다.

하야시는 나가사키로 가서 에도를 만나자 사이고의 의중을 상세히
얘기해 주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에도는 얘기가 끝나자 불만스럽게 내뱉었다.

"사이고 그 양반 이제 완전히 영감같은 생각을 하는군. 오십도
안됐으면서."

"글쎄 말입니다. 실망했지 뭡니까"

"그러나 내 생각에는 말이지,사이고공이 말로는 그렇게 하지만,
가슴 속은 다를 거요.

아무리 덕인이고 성인군자 같은 분이라고 해도 사람은 감정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단 말이오.오쿠보에 대한 감정을 결코 지워버릴 수가
없을 거요. 겉으로는 태연한체 하지만."

"물론이죠"

"그러니까 사이고공의 그 감정에 불을 붙여야 돼요"

"어떻게 말입니까?"

"사이고공이 먼저 일어서길 바랄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봉기하는
거요.

그러면 사이고공은 결코 남의 일처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거요.
틀림없이 자기도 일어선다 그거요"

하야시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않을 겁니다. 사이고 도노는 이제 정치에서 생각이
멀어졌더라구요.

제가 제2 유신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했더니,이제 이 나라에 다시
내전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반대하셨어요.

그러면서 자기는 교육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하시더라니까요.

설령 사가에서 무력봉기가 있더라도 사이고 도노는 일어서지 않을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그건 하야시 당신 생각이지, 결코
그렇지 않아요. 사이고공은 그런 사람이 아니오. 내가 잘 알아요.
뜨거운 분이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