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노동운동의 메카 울산 노동현장이 변하고 있다.

울산하면 으레 떠올리던 과격투쟁-공권력투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올해에는 사라진 것이다.

현총련(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의 공동투쟁이 없어지면서 개별 노동조합의
협상 전략전술이 달라졌고 노조 주체인 조합원의 인식이 바뀌었다.

변화의 폭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현대자동차 노조를 들수 있다.

불법파업과 공권력투입의 대명사인 현자노조집행부의 성격이 1백80도
전환했다.

지난해 선출된 이영복노조위원장의 "도덕성위주의 노동운동을 펼치겠다"는
취임일성에서 변화의 분위기를 예견할 수 있었다.

노조는 지난87년부터 휘날리며 노동운동을 상징하던 깃발과 과격구호를
사무실에서 제거했다.

대신 노조도 조합원에게 봉사하는 서비스업종이라며 일선경영기법을 도입해
봉사하는 노조상도 세웠다.

이때문에 현자노조는 국내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강관은 지난7월 조합원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의하고도 정상조업속
에 협상을 벌여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노조가 파업결의를 무기로 노조의 요구를 사측이 수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을뿐 기업을 파괴하는 파업은 자제한 것이다.

변화된 협상 전략전술이다.

이밖에 현대종합목재 고려화학 현대알루미늄등도 무파업으로 올해 임단협을
끝냈다.

노동운동에 대한 조합원 시각이 과거와 전혀 다른 것도 큰 변화다.

현대종합목재는 지난7월2일 대의원대회에서의 쟁의발생결의 가부동수를
위원장이 가결을 선언하자 대의원이 부결이라며 반발하는 기이한 모습이
벌어졌다.

파업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협상은 할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12일 현대중공업 기자실.

지원부문 대의원들이 노조의 무리한 파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상조업을
촉구했다.

이후 전체조합원 2만2천여명의 절반이 넘는 1만3천여명이 봇물터지듯
정상조업 결의문에 서명했다.

초강성노조로 분류되던 현중조합원의 성격상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사측은 물론 정부도 놀랬다.

조합원들이 노조집행부의 정치지향적 투쟁방향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지난87년부터 무리한 요구를 내걸고 파업한 대가가 과연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스스로 가지게 되면서 이런 변화조짐이 생긴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매년 분규로 국내외 경쟁업체에 뒤지는 것을 실감한 조합원들이 현실로
돌아온 것이라는 평가다.

더구나 올해 협상만을 통해 더 많은 실리를 찾았다는 인식이 조합원들에게
팽배해진만큼 내년에는 분규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현지에서 노동현장을 지켜본 이수부부산지방노동청장은 "파업보다 협상을
통한 쟁점실현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조합원의 공감대가 형성돼 이것이
집행부에 전달된 것이 올해의 노동운동의 방향을 가늠했다"며 "내년에는
노사관계가 더 협력적인 방향으로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울산=김문권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