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태 < 제일경제연구소 소장 >


금년초 정부는 연간 물가억제선을 6%로 설정했다.

그러나 8월말까지 소비자물가는 이미 억제선에 도달함으로써(전년동기대비
로는 7.4% 상승) 매우 불안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농축수산물이 작년말에 비해 12.1%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서비스요금도 6.6% 상승한 반면 공업제품의 가격은 2.1%의
상승률을 보이는데 그쳤다.

물가불안의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농축수산물의 가격은 작년 하반기 냉해의
후유증과 금년 여름의 한발로 채소류를 중심으로 큰 폭의 오름세를
나타냈다.

서비스요금의 높은 상승률은 상반기중의 일부 공공요금인상, 연초에 발표된
가격자유화조치에 편승한 개인서비스 요금의 상승등에 주로 그 원인이 있다.

정부는 금년 상반기중 물가의 불안한 움직임과 경기의 호조를 보고 하반기
부터는 물가안정을 위한 노력을 대폭 강화시켜 나갈것임을 천명한바 있다.

이러한 조치의 일환으로 통화관리당국이 8월중 지준관리를 엄격히 하는
바람에 콜금리가 한때 법정상한인 25%까지 치솟은 적도 있었다.

또한 정부가 당초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흑자예산을 편성하여 그
흑자분으로 한은차입을 상환한다는 의욕적인 계획을 발표한 적도 있었다.

금년들어 정부가 취해온 일련의 물가관련정책들을 보고 느낀바를 몇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정책당국의 물가안정 의지에 관한 것이다.

금년의 인플레 목표치를 보면 물가문제에 관한 안이한 자세를 읽을수 있다.

원래 신경제 5개년계획에 나타난 물가목표는 소비자물가의 상승을 금년에는
4.3%, 그리고 내년에는 3.7%로 억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년의 경제운영계획에서는 이보다 높은 6%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동안 국내경기는 사상 유례없는 장기불황을 겪고 난 상황이어서
사실은 물가를 누르기에는 비교적 양호한 환경이었음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목표설정이었다.

눈을 밖으로 돌려보더라도 우리의 주요 경쟁상대국들인 일본 대만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대개
3%선에 머물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금년의 물가상승억제선은 높아도 4%대에서 결정
되었어야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가격통제와 물가안정의 관계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던 감이 없지
않다.

지수상의 물가를 단기적으로 안정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중의 하나가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통제는 큰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자원의 낭비를 가져오고 암시장과 이중가격의 형성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가격통제가 물가안정의 유효한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가격규제는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존의 가격규제를 없애려 할 경우에도 철저한 보완대책이 강구
되지 못한다면 구공산권에서와 같은 급속한 인플레와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정책당국이 가격규제를 철폐하려 할때에는 경기회복지연등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과 이를 실천에 옮길수
있는 실현가능성 있는 세부대책을 아울러 준비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년초 이러한 사전준비없이 가격자유화가 거론됐고 그때부터
서비스요금을 중심으로 물가불안이 심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서둘러 이미 발표한 가격자유화조치를 다시 철회하고 관련업체들로
하여금 가격을 원래수준으로 환원해 주도록 행정적인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가격은 하방경직성이 있어서 한번 오른 다음에는 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번 경험한 적이 있다.

가격자유화는 언젠가는 실시하되 보완책과 각오를 단단히 하여야만 부작용
이나 후퇴없이 그 장점을 살릴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는 인플레이션 요인에 따라 적절한 정책처방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즉 인플레이션 압력이 수요요인에 의한 것인지, 공급요인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하고 요인별로 정책수단을 달리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년들어 현재까지 나타난 물가불안은 주로 농수산물 흉작, 진입규제로
인한 특정 산업분야에서의 독과점체제, 임금인상, 수입원자재 가격상승등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경우에는 부족물품에 대한 과감한 대외수입확대, 진입규제완화를 통한
경쟁촉진, 농축수산물의 유통구조개선 임금안정등이 물가압력을 해소하기
위한 올바른 정책 선택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부는 농민보호, 기득권계층의 압력, 국민정서등을 감안하여
그러한 정책대신 손쉬운 금융긴축을 통해 물가불안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결국은 긴축도 물가안정도 이루지 못한 채 금리인상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점만 야기했다.

사실 정부가 금년 물가목표치를 높게 잡았던 것도 물가와 통화를 지나치게
연관시켜 봄으로써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이들의 상승을 어느정도 감내할수
밖에 없다는 단순논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물가문제만 나오면 통화긴축을 반드시 거론하고 대책에 포함시키는 관행
에서 벗어나 인플레요인에 따라 정확한 정책수단을 선택해 나가야 한다.

넷째, 정책당국은 일단 대책을 세웠으면 이를 가능한한 조용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

나중에 책임을 면하기위한 방편인지는 모르나 정확한 진단도 없이 경기
과열문제를 미리 들고 나오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물가문제에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정책의 실효성여부는 접어둔채
종합대책발표만을 남발한다면 국민들사이에 물가불안심리를 더욱 증폭시키게
될뿐만 아니라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정면돌파의식의 물가대책을 마련하되 이를 대외적으로 크게
광고하기보다는 소리없이 시행한는 것이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