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똑같이 밤새고 고생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도 되는 겁니까"

지난92년 6월 어느날 아침 허승 당시외무부 제2차관보(현 제네바대사)는
박용도상공부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6개월동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열렸던 "대통령 방일 후속조치협상"의
수석대표를 맡았던 허차관보.

그가 서울대 법대 선배이기도 한 박상공차관에게 분에 못이겨 "항의"전화를
했던 사연은 이렇다.

허차관보는 최종협상을 마치고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설립등 7개항의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그러나 협상에 참여했던 상공부의 한 실무자는 "협상결과가 불만스럽다"는
말을 기자들 앞에서 한다.

이 말은 곧바로 "외무부가 정치적인 분위기에 밀려 협상에서 실리를 챙기지
못했다"는 식으로 신문의 고십란을 장식했다.

허차관보의 입장에서 보면 정작 협상테이블에선 아무 말이 없던 상공부의
관료가 이런 말을 한것은 명색이 수석대표인 그를 비난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은 대외통상업무 주도권을 둘러싼 외무부와 상공부간
미묘한 감정의 앙금이 그대로 표출했다는 시각이 많다.

보통 통상관료라고 하면 외무부와 경제기획원.상공자원부의 대외경제업무
담당 관료들을 가리킨다.

이중에서도 대외협상의 공식창구인 외무부 관료들은 누가 뭐래도 통상관료
의 "얼굴"이다.

대부분 통상협상엔 외무부관료가 수석대표로 나가는게 관례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국과의 최고위 통상협상채널인 한미경제협의회는 외무부 차관이,
한미무역실무위원회는 외무부 통상국장이 우리측 수석대표다.

더구나 세계각국에 퍼져 있는 1백42개 재외공관은 외무부를 통상주무부처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손과 발"이다.

5급이상만 6백여명이 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외통상분야가 세분화.전문화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공산품뿐만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부품하나하나에 대한
지식, 그리고 서비스 지적재산권문제등은 외무부통상관료의 상식이나
감으로론 이미 통할수 없게 돼 있다.

어차피 이같은 문제는 "전문성"이 무기인 주무부처들의 소관이 돼 있다.

외무부 통상관료들에겐 도도히 흐르는 시대의 도전이기도 하다.

도전과 응전사이엔 항상 그렇듯이 여기서도 쇳소리가 나온다.

"실제협상내용은 알지도 못하면서 영어나 좀 한다고 수석대표로 폼만 잡고
앉아 있다"는 비아냥이 대표적 사례다.

극복할수 없는한 어쩔수 없는 일이다.

이는 외무부 통상관료들이 비경제관료라는 "원초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외무관료들은 속성상 상대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우선시 하지
않을수 없어 실리보다는 "명분"에 쫓기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86년 체결된 한미지적재산권 양해각서(ROU)도 이런 측면에서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를 수석대표로 한 한미간 지재권협상에서 미국의
물질특허를 한국에서 소급 보호하기로 합의한 것은 경제관료들 사이에서는
"항복문서"로 통한다.

당시 정권의 취약성때문에 미국에 "벗어선 안될 것까지 벗어줬다"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그때 협상이 전적으로 외무부의 주도하에 진행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그냥 밀어붙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특허와 같이
전문적이고도 중대한 사안의 합의문이 주무부처인 특허청이나 상공부
보사부실무자들도 모르게 작성됐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여기에
주미대사가 사인을 한건 또 뭡니까. 근시안도 이만 저만이 아니지
않습니까"(보사부 A국장)

실제로 당시 특허청장이었던 차수명민자당의원은 그해 국회에서 책임추궁을
당하는등 곤욕을 치뤘지만 "아무 할 말이 없었다"(특허청 K국장)고 한다.

외무부 통상관료들의 비전문성은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훈령
제일주의"에서도 읽을 수 있다.

사안을 꿰뚫고 있지 못한 탓에 본부에서 가져간 훈령만 읽을뿐 그 이상도
이하도 말할수 없다는게 한국외교관의 처지다.

예상밖의 문제가 협상테이블에서 제기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본부훈령을 어기고 좀 아는척을 하다간 일이 뒤틀리기 십상이다.

"괘씸죄"에 걸리기도 한다.

물론 외무부도 "변신"의 노력을 보이고 있긴 하다.

정무쪽에 비해선 아무래도 "찬밥"이었던 통상부문이 차츰 주목받고 있는게
그 하나다.

지난87년 국제경제국의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던 통상정책과가 통상국
으로 승격되면서 외무부내에서 통상라인의 위상도 높아가고 있다.

제2차관보를 정점으로 통상국과 국제경제국으로 이어지는 통상라인엔
20-30년동안 통상협상만 따라다닌 "통상 베테랑"들도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게다가 해외공관의 무게중심을 외교안보에서 통상쪽으로 옮기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외무부는 우선 일본내 11개 총영사관의 업무를 수출촉진및 투자유치등
경제통상중심으로 전면 개편키로 하고 16일 공로명 주일대사 주재의 총영사
회의에서 이같은 방침을 시달할 계획이다.

"외교관의 세일즈맨화"가 이제 막 시작됐다고나 할까.

그러나 외무부 통상관료가 명실상부한 통상관료의 "대표주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갈길이 아직도 멀다는 지적이 많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에서 첨병의 역할을 하자면 실물경제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보다 유연한 자세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본래 의도야 무엇이었든간에 지난84년 재외공관장회의때 전두환 전대통령이
우리 외교관들에게 던졌다는 얘기는 현재 시점에서도 다시 새겨볼만 할 것
같다.

"한국의 외교관들은 좀더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 정리=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