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비인기학문을 하는 것은 더더욱 많은 고통과 외로움을 수반한다.

전상운박사(66.성신여대재단이사장)는 50년대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과학사분야에 뛰어들어 근40년간 한국과학사 연구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한국과학기술사" "한국의 과학과 기술" "과학의 역사" "한국의 과학
문화재"등의 책을 출간, 한국과학기술사연구의 태두로 불리는 전박사를
만나 역사속의 과학을 다뤄온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과학사를 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전박사=대학(서울대화학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위대한 화학자가 되어
볼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피란지 부산에서의 대학생활은 절망과 좌절만을
안겨줬어요. 그런 와중에 헌책방에서 발견한 G 사튼의 "과학사와 새
휴머니즘"이라는 책은 어두웠던 마음에 한줄기 밝은빛을 던졌어요.

참된 휴머니스트는 예술과 종교의 생명을 아는 것처럼 과학의 생명도 알지
않으면 안된다는 대목을 읽는 순간 인간과 과학을 함께 이해할수 있는
과학사라는 학문에 매달리기로 작정했지요.


-당시에는 과학사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을 텐데요.

<>전박사=66년 "한국과학기술사"를 처음 내고 그해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그책은 학술서적전문출판사에서 발간을 거부해 다른
출판사에서 원고료나 인세 없이 책만 내준다는 조건으로 만들었어요.

80년대까지 12평짜리 국민주택에 방 두개를 덧달아 만든 집에 살았으니
장사로 치면 한참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지요.


-과학사중에서도 특히 한국과학사를 다루셨지요.

<>전박사=62년 봄이었어요. 과학사를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서양과학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미예일대 과학사학과에 다니는 일본
유학생 팔목씨로부터 편지가 왔어요. 지도교수인 프라이스박사의 부탁에
의한 것이라는 사연과 함께 온 편지의 내용은 36년에 나온 루퍼스의 "한국의
천문학"에 소개된 조선시대의 천문시계에 관해 알려달라는 것이었어요.

36년 당시에는 인촌 김성수선생댁에 있었던 것으로 적혀있어 급히 전화를
걸어봤더니 고려대박물관에 기증했다는 거예요. 고려대박물관에 달려갔지요.
그 천문시계 연구에 열중하면서 우리나라 전통과학에 대해 눈을 떴어요.
비로소 한국과학사 연구야말로 일생을 걸어볼만한 일이라는 확신이 섰지요.


-과학사연구의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전박사=역사연구가 한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과정을 다룸으로써
보다 나은 내일의 방향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과학사연구는 과학의 발전
과정을 살핌으로써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닫는 과학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
하기 위한 것이지요.

다른 기초과학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아웃푸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과학기술의 방향이 파괴가 아닌
창조쪽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라 믿어요.


-과학사란 대상은 과학이지만 접근은 역사학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전박사=그래서 대학졸업후 공대대학원에 가는 것을 포기했어요. 그러다가
60년대초에 사학과 대학원에 들어갔지요. 69년 미뉴욕주립대에서 과학사
연구원을 지낸 뒤 77년 일본 교토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사학전공이었지요. 현재 젊은사람중 과학사를 하려는 사람은 과학전공자와
사학전공자로 나뉘는데 과학전공자가 더 열심인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 우리나라 시계의 역사를 총정리한 "시간과 시계 그리고 역사"라는
책을 펴내셨는데..

<>전박사=시계는 본래 과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커요. 해시계와
물시계는 천문학적으로 볼때 중요한 관측기계이고 기계시계는 물리학과
기계학의 발달과 맥을 같이해요.

요사이 유행하는 전자시계 또한 전자산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지요. 따라서 시계연구는 과학기술사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필수과정
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의 시계사는 물론 중국과 유럽의 시계역사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사진자료까지 풍부하게 게재했는데요.

<>전박사=늘 사진기를 들고 다녔어요. 시계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없어지는 경우가 잦아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었지요. 실제로
전북 익산에 있던 백각환해시계의 경우 15세기전에 만든 것으로 60년대후반
에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어요.

일본에는 시계박물관만 10군데가 넘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어요.


-우리나라 옛 시계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전박사=신라시대 해시계와 물시계로 현재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만 해도
5~6종이 돼요. 조선조 세종때는 앙부일구와 현주일구 정남일구, 장영실의
자격루가 만들어졌고 17세기에 이미 철과 놋쇠로 된 기계시계인 자명종이
만들어졌지요.

1669년에 만들어진 송이영의 혼천시계도 지름이 40cm나 되는 기계시계
입니다. 이처럼 17세기까지는 우리나라 시계가 정밀도나 디자인에 있어
세계 어느나라것보다 우수했어요. 우리나라 과학의 우수성을 일깨우고 현재
시계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하고 싶었어요.


-81년부터 문화재위원도 맡고 계시는데요.

<>전박사=책 도자기 공예품등 동산문화재를 다루는 제2분과 위원이에요.
시계나 측우기등 과학문화재의 질이나 연대에 관한 자문을 하지요.


-문화재는 어느 것이든지 진위시비가 일수 있는 소지가 많은데요. 얼마전엔
조선조 측우기다, 아니다 해서 논란이 일었지요.

<>전박사=신문사 몇곳에서 문의가 왔길래 확신이 서지 않으니 기사화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한곳에서 크게 기사화
했더군요. 혹시 잘못봤나 해서 다시 살펴봤는데 역시 미심쩍었어요.

문화재 종류는 발견과정이 극적인 것일수록 반드시 검증과정이 필요하고
보도는 이 검증과정을 거친 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한번은
66년에 나온 책에 사진까지 실린 것을 새삼스럽게 새로 발견됐다고 한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적도 있어요.


-요즈음 가장 심혈을 기울이시는 일은.

<>전박사=생전에 과학박물관 설립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인 만큼 이곳
저곳 뛰어다니며 협조를 요청하는데 쉽지 않아요. 대덕에 있는 과학관은
과학기술관이지 박물관이 아니예요. 과학박물관이 안되면 자연사박물관
이라도 있어야지요. 세상에 제대로 된 수족관도 하나 없는 나라는 우리뿐일
거예요. 서울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정말 불쌍해요.

자기나라 강과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의 모습도 못보고 자라니까요. 그러니
곤충을 사랑할 줄도 모르지요.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과학기술처
소관이 아니고 문화체육부 소관이라고 하니 도대체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야단이면서
막상 과학기술발전의 중요성을 일깨울 과학박물관의 설립에는 딴전을
피우는 것은 이해할수 없어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물론 과학과 인간의 관계를 올바로 인식시키기 위해서도
과학박물관의 설립은 필수지요.


-성신여대에 오래 재직하셨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가요.

<>전박사=59년 설립자 이숙종선생께서 곧 대학을 설립할 테니 함께
일하자고 하셨어요. 62년 초급대학으로 만들어졌다가 66년 4년제대학이
되면서부터 줄곧 있었지요. 중간에 남녀공학대학으로 오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설립자와의 의리도 있고 해서 그냥 있었어요. 덕분에 재단이사장
까지 맡게 됐구요.


-여자대학의 진로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전박사=젊은 교수들 사이에 남녀공학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연구중이지요. 박사과정은 오래전부터 남녀공학이었어요. 석사과정도 남녀
공학으로 하는 것을 검토중이지요. 학부의 경우 섣불리 남녀공학으로 했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보다는 오히려 여자대학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전문화 차별화하는 방안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주례를 안서시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전박사=여자대학에 있다보니 처음엔 기회가 없었어요. 기회가 왔을
때는 주례를 서줄 만큼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사양했지요. 그러다보니
누구의 청은 거절하고 누구의 청은 들어줄수 없어 아예 안하기로 했어요.

(전박사는 함남원산 태생으로 서울대화학과와 동대학원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성신여대 대학원장과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재단이사장으로 재임중이다.
교토대객원교수 영국케임브리지대 니덤연구소초빙교수를 지냈고 과학기술상
외솔상 국민훈장동백장을 받았다.

뒤돌아보면 힘들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적어 한곳에 머무른
것이 한편으로는 한국과학사연구의 대표,대학의 총장과 재단이사장이 되게끔
했다며 부족한 듯한 상태를 참는 것도 때로는 힘이 된다고 말을 맺었다)

< 대담 = 박성희 문화부장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