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등은 70년대중반 일찌감치 자본거래와 금융자율화
조치를 단행했다. 상품시장의 개방도 대부분이 동시에 진행됐다.

대체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자본자유화를 개혁초기단계에, 칠레는
금리와 금융자율화를 먼저하는 수순을 밟았다는 차이는 있으나 상당히
빨리, 그리고 급격하게 자율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한결같이 외자의 급격한 유입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금리차이는 더 벌어졌으며 물가급등과 자국화폐의 급격한 평가절상,
경상수지 악화에 직면해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로인한 후유증은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들 국가도 금융자율화와 동시에 재정적자를 축소하는등 경제
안정화 조치를 취하기는 했다. 칠레의 경우 정부지출 삭감에 성공해
79년과 80년에 종합재정수지가 흑자를 냈었다. 우루과이도 이 기간에
균형재정을 이룩했었다.

아르헨티나도 재정적자를 완전히 해소하진 못했지만 적지않은 감축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노력이 불충분했던데다 환율이나 임금관리등
다른 거시경제정책과의 일관성 결여로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빚어내고 말았다.

이들 국가들은 자본자유화 이전부터 크롤링 펙(Crawling Peg)이라는
환율제도를 운용해 왔다. 국내외 물가상승률을 비교해 그 차이보다 작은
비율로 환율을 평가절하시키는 제도다. 하지만 이런 환율제도는 오히려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제도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환율의 절하율을 축소시키도록 돼있는데
국내외 금리차이는 별로 좁혀지지 않아 환율의 절하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외 금리차(스프레드)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77년에 칠레와 우루과이의 물가상승률은 50%였고 아르헨티나는
2백%의 폭등세를 기록했다.

물가가 오르고 화폐의 명목절하율이 낮아 실질환율은 평가절상 됐다.
실질환율 절상률은 78년이후 80년까지 칠레는 36%, 우루과이는 67%,
아르헨티나는 74%에 달했다.

이같은 실질환율의 절상은 경상수지를 악화시켰고 경제개혁에 대한
기업과 국민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자본의 해외도피 현상까지
나타나게 됐다. 한마디로 금융위기였다.

이와함께 무리한 임금정책도 자본자유화를 실패로 만드는 요인이 됐다.

칠레의 경우 임금을 과거의 인플레이션율에 연동시켰다. 이는 물가가
오르면 다시 임금을 늘리고 다시 소비와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됐다. 전체적으로 실질임금을 상승시키고 재정긴축의 효과를
반감시켰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물가를 안정시키지 못한채 국내외간의 자본거래를 자유화시킨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가를 극명하게 지적해준 사례라고 할수 있다.

<정만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