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사이고가 직접 시키기야 했겠어. 부하들이 얘기를 듣고 알아서 한
짓이겠지. 아니면 이다가키의 심복들 수작인지도 모른다구. 이다가키는 당장
출병을 주장하는 가장 강경파거든. 우리로 하여금 조선국을 정벌케 하라,
어쩌고 한걸 보면 아무래도 이다가키 쪽인 것 같아"

"어쨌든 사이고상을 일단 사신으로 보내는 걸로 해야 당신이 위험을 면할것
같다구요. 열혈낭인이니 뭐니 하는 자들이 자객으로 돌변하는거
아니겠어요?"

"맞다구"

"아이 무서워. 생각도 하기 싫다구요. 당신같이 점잖고 중도적인 분이
자객들의 표적이 되다니..."

"아직 표적이 된건 아니잖아. 자, 그만 자자구"

산조는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럽기만 한듯 그녀를 지그시 끌어안았다.

이튿날 예정대로 회의는 다시 열렸다.

어느 쪽이든 오늘 회의에서는 결판을 내야 된다는 생각에서 모두 바짝
긴장이 되어 있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런데 사이고는 회의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이다가키가 사이고의 서찰을 산조에게 제출했다.

그것을 받아 펼쳐 읽어본 산조는 굳어진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다가키가,

"사이고공의 서찰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 회의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니 모두 그 내용을 알수 있도록 낭독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좋아요. 나한테 사적으로 보냈다기 보다도 여러분 모두에게 보낸 글이라고
할수 있으니, 낭독하지요"

산조는 숨을 가다듬은 다음 차분한 목소리로 사이고의 서찰을 읽기 시작
했다.

사이고 자신의 구상인 조선국과의 동맹론이 먼저 펼쳐져 있었다.

자기가 전권대사로 가려는 것은 그 동맹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이지, 결코
전쟁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대원군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내 배일로 나올 경우에는 전쟁도
불사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그것은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할 문제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 6월의 회의에서 일단 결정이 된 문제를 새삼스럽게 다시
논의한다는 것은 사절단으로 나가지 않고 잔류하여 국정을 수행한 각료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니 심히 불쾌하다는 말을 덧붙인 다음, 마지막으로 "만약
오늘 회의에서 이미 결정된 문제를 뒤집어 엎을 경우에는 나는 일체의
관직을 버리고 정부에서 떠날 것입니다"

이렇게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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