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전격실시가 발표되기 20일전쯤부터 김용진재무부세제실장(현 차관)
은 이환균제1차관보(현 관세청장)방을 자주 들락거린다.

"아휴 내 가슴이야"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김실장.

"왜 그래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이차관보는 궁금한 듯 묻는다.

김실장은 그러나 고개만 좌우로 흔든다.

발표 3일전에도 김실장은 이차관보 방에 들른다.

"아휴 답답해" 또 가슴을 치며 얘기하는 김실장에게 이차관보는 "어디가
많이 아픈 모양인데 X-레이라도 한번 찍어 보시지 그러나"라고 한다.

김실장의 대답은 그러나 좀 달라진다.

"내 병은 내가 알아. 한 사흘정도 지나면 나을테지" 김실장의 "병"은
3일뒤 실명제가 발표되면서 말끔히 낫는다.

가슴앓이 환자였던 김실장. 그는 실명제실시단장으로 "8.12이후"를 지휘해
나간다.

이솝우화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다.

실명제작업은 한마디로 철통보안속에 진행된다. 8월12일 발표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드라마가 이어진다.

"실명제 작업이 한창일 때였을 거예요. 대통령을 만나 "혹시 며칠 전에
새나갈 수도 있습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대통령께서는 안색을 바꾸시더군요. "나가면 절대 안된다"고
몇번 강조하셨어요.

고민도 많았을 수 밖에요. 그래서 김정류전청와대비서실장의 회고록
(한국경제정책 30년사)도 뒤적여 봤지요.

비밀작업의 전형으로 알려진 화폐개혁 부분을 다시 찾아 읽어보기 위해서
였지요"(홍재형재무부장관)

"보안이 유지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한강으로 가자는 다짐도 여러번
했습니다"(김진표 당시 세제심의관)

보안문제는 작업장소를 구할 때부터 가장 큰 현안으로 대두된다. 7월9일
대통령으로부터 실명제준비를 지시받은 홍장관은 곧바로 재무부팀(김실장
김국장 진동수해외투자과장 임지순소득세과장 백운찬소득세과 사무관)을
구성한다.

이들은 곧바로 KDI팀(양수길부총리자문관 남상우부원장 김준일연구위원)과
합류한다.

난상토론과 도상연습등 본격적인 실무작업이 시작된다. 이때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로 대두된건 비밀작업장소를 마련하는 일.

장소물색 책임은 양수길자문관(현 교통개발연구원장)이 맡는다. "25년이상
을 가까이 사귀어온 친구 송관율울티모사사장을 찾았죠. ''국제투자연구원''
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하려 하는데 임시사무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해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등학교 길건너편 금자탑이라는
이름의 3층빌딩 201호실을 마련했습니다. PC설비를 임대해 설치하고 간판도
내달았죠"(양원장)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건물 1층에는 한국가스신문사가 들어 있었다. 가스
공사사장을 지낸 바 있는 이경식부총리는 혹시 주변에서 얼굴을 알아볼까봐
주로 저녁무렵에 남방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사무실을 들렀다.

"운전기사에게 반대방향으로 가게한 뒤 운전기사를 돌려 보내고 그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작업장으로 가곤 했지요"(이부총리)

이러는 사이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7월28일 작업팀엔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다.

"지금부터 언제라도 실명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24시간 합숙
작업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다시 장소가 문제였다. 밤샘작업은 누워서 쉴수 있는 곳이 필요한데
금자탑 201호실은 그게 안됐다.

"강북 강남 과천 안양 군포등 여러 곳을 생각했어요. 보안유지를 위해선
강북이 적지였으나 부총리와 내가 왔다갔다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김진표국장 친구인 안양시장의 관사가 비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쓰는
방법도 검토했죠. 역시 보안문제가 걸렸어요"(홍장관)

합숙장소를 구하는 일은 백사무관 몫으로 돌아갔다. "과천 시내 복덕방을
훑고 돌아다니는데 마침 주인이 이사를 가고 전세를 내놓은 빈 아파트
하나를 찾아 냈어요. 그게 바로 ''실명제의 산실'' 과천 주공아파트 505동
304호 였지요. 대학교수들이 남북통일에 대한 정부의 단기연구용역을 수행
하기 위해 쓰려한다며 주인과 청소비를 포함, 4백50만원에 두달간 월세계약
을 맺었습니다"(백사무관)

남북통일 연구용역으로 위장한 탓에 작업팀사이에선 실명제준비를 "남북
통일작전"으로 불렀다.

백사무관이 아파트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홍장관등 "상층부"는 실무요원
으로 누구를, 또 어떻게 빼낼까로 고민한다.

"최단 시간에 작업을 끝내려면 실명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누구를''은 간단히 결정났어요. 과거 실명제작업에 참여했던 최규연
사무관(외자정책과)과 임동빈사무관(관세정책과)을 임과장과 함께 24시간
합숙작업토록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명분으로 빼낼지가 정말 문제
였어요. 더구나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세제개편작업이 한창일때 세제실의
임과장을 빼낸다는 건 누가보더라도 ''세제개편보다 더 중요한 작업''(당시
로선 실명제밖에 생각할수 없었다)이 진행되고 있음을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지요. 이런저런 궁리끝에 생각해낸게 해외출장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장목적''은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각국의 실명제를 연구하기
위해 40일간의 출장계획을 세우고 이 세사람을 보내기로 했다는 식의
''눈가림 시나리오''를 썼지요. 실명제연구를 위해 지금 해외출장을 내보내니
실명제는 빨라야 내년쯤이나 되지 않겠느냐는 연막을 쳤다고나 할까요"
(김국장)

해외출장명령을 받은 세사람은 출국인사차 각 방을 돌아 다닌다. 어느
간부는 "장도"라고 쓰여진 봉투를 여비에 보태쓰라고 주기도 했다.

"처음엔 하와이로 보내 한 3~4일 쉬게한 뒤 극비로 귀국시킬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어요. 그래서 김포공항까지 가서 U턴
시키는 방법을 썼지요"(김국장)

이야기를 다시 본론으로 되돌리면 최.임 두 사무관은 출국 당일에도 해외로
떠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날 아침 이상한 "지령" 하나를 받는다. "가족들을 공항에
전송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간편한 복장으로 일단 재무부에 집결하라"는게
지령의 내용.

결국 이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향하던 백사무관의 르망승용차는 김포공항
근처 어디에선가 차머리를 바꿔 온 길을 다시 달린다.

그들의 "해외출장 숙박지"는 과천 주공아파트 505동 304호로 정해진다.
숙박지에선 이따금씩 집과 사무실로 "국제전화"를 건다.

안부를 묻는 쇼인 것이다. 김실장과 김국장은 양동작전도 벌인다. 재무부
3층 기자실에 자주 들락거린 것.

"웬일인지 이들이 기자실에 자주 들렀어요. 화제 내용은 당시 문제가 되던
토초세였지요. 그리곤 ''국회가 열리면 왜 실명제를 실시하지 않느냐고 공세
가 대단할텐데 어떡하면 좋겠나''고 걱정스레 묻기도 했어요. 나중에 생각
하니 능청을 떨고 다닌 거였지요"(당시 재무부 출입 H기자)

합숙장소가 마련되고 본격 작업에 들어갔지만 복사기 서류파쇄기 PC등은
아직 불비상태였다.

이 장비를 갖추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작업 사실이 누설될 뻔한 또 하나의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백사무관은 복사기등을 일괄 구매키로하고 신도리코 영업사원을 과천
호프호텔로 부른다.

그러나 백사무관의 "지참금"은 이부총리와 홍장관이 우선 쓰라고 준 "단돈
5백만원". 한데 복사기값만도 7백70만원이 아닌가.

백사무관은 외상으로 쓰자고 한다. 신도리코 직원은 그러려면 신분을 밝혀
달라고 한다. 백사무관은 하는수 없이 재무부 직원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교수들이 정부용역작업을 하고 있는 "505동 304호"로 물건을 보내
달라고 배달처를 일러준다.

그런데 문제는 뜻밖의 곳에서 터진다. 물건을 가득 실은 중형트럭 한대가
과천 청사로 들어온 것이다.

신도리코 직원이 "505동 304호"를 과천 주공아파트가 아닌 과천 종합청사의
동호수로 착각한 때문이다.

청사에 들어와서 505동을 찾으니 있을리가 없었다. 이 직원은 곧장 재무부
에 전화를 걸어 "백운찬"이란 사람이 소득세과 사무관임을 알아낸다.

그러곤 사무실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소득세과 주무사무관인
주영섭사무관.

"백사무관이 주문한 물건을 가져왔다"는 말에 잠시 당황한 주사무관은
백사무관의 집 전화번호를 일러준다. 그리로 전화해 보라고.

"연락을 받고는 머리털 끝이 바짝 섰을 정도로 놀랐어요. 뭔가 ''끝장''날
것같은 생각도 들었지요. 곧장 사무실로 달려갔죠. 전화를 받은 주사무관을
만나 ''통화 내용''을 절대로 누설하지 말하는 각서를 받았지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각서를 쓰라긴 아마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엔
어쩔수 없었어요. 그래도 주사무관이 잘 이해해줘서 다행이었지만"
(백사무관)

국민은행의 김혜영과장도 그때 합류한다. "89년 실명제 작업을 할때 함께
일했던 진과장이 7월 중순께부터 전화로 자꾸 뭘 물어보더니 점점 빈도수가
많아지는 거예요. 그러더니 하루는 이렇게 요구를 해 와요. ''매일 전화로
얘기하는게 나도 힘들고 당신도 힘들테니 차라리 휴가를 좀 낼수 없겠느냐''
고요. 마침 휴가때도 됐고 해서 7월28일 휴가원을 내고 과천으로 진과장을
만나러 갔죠. 그는 나를 그들의 아지트(505동 304호)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김과장)

국세청에서 PC요원으로 차출돼온 백승훈조사관의 아파트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파트에 설치된 기기들이 국세청에서 쓰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일부 부품을 사와 고쳐 쓸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용산행엔 백사무관이 "감시조"로 따라 붙는다.

무슨 "정보부 끄나풀"처럼 항상 "동행"이었다. 작업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작업의 물량도 많아졌다.

여기서 90년도 국세청 워드프로세서 경진대회에서 1등한 최회선조사관
(8급)이 합류한다.

이때는 이부총리가 대통령이 백조사관 지명차출때 써먹은 "지방경제
활성화대책" 작업요원으로 추경석국세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아파트 합숙팀은 그래도 해외출장 명령을 받거나 휴가를 얻어 나왔으므로
그런대로 보안유지가 쉬웠다. 그런데 출퇴근하는 사람은 그게 안됐다.

세제실 소속이 아닌 진동수해외투자과장(현 산업금융과장)이 특히 그랬다.
홍재형재무부장관의 얘기를 들으면 그의 고민은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하루는 진과장이 나를 찾아 왔어요. 담당 차관보인 임창열제2차관보(현
1차관보)에 말좀 해 달라는 거예요. 그땐 진과장이 맡고 있던 대러시아
경협문제가 한창 쟁점이 됐을 때인데 임차관보가 일을 시키면 제대로 해
오지도 않고, 자리는 자주 뜨고해서 짜증을 많이 냈던 모양이에요. 처음엔
좀 참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며칠후 또 와서 괴롭다는 거예요. 그래서
임차관보에게 얘기를 해줬죠. ''진과장에겐 내가 개인적으로 국제관련업무를
시켰으니 좀 이해해 줘야 될 것 같다''고요"

8월9일 "D-데이"가 확정됐다. 이젠 각종 작업물의 인쇄가 문제였다. 과천
에선 범신사와 신진이라는 인쇄소가 제법 큰 축에 든다.

실무작업팀은 이 두 인쇄소중 범신사를 택한다. 지하에 들어 있어 보안
유지에 유리해 보였다. 백사무관이 사전답사를 한다.

다른 건 문제가 없었으나 야간작업은 좀 어렵다는게 백삼선 범신사사장의
반응. "위"에 보고하니 그래도 지하에 있는 범신사가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었다.

백사무관은 백삼선사장을 다시 만난다. "비밀작업을 해야 한다. 돈은
충분히 주겠다. 내용은 뒤에 알게 될거다. 해달라"고 종씨인 백사장에게
매달렸고 결국 "해주겠다"는 답을 얻어냈다.

실명제 작업팀은 11일 저녁 작업 가능한 송강원공장장등 인쇄소 직원을
7명 뽑았다. 마지막 비밀요원 선발이었다. 물론 백사장도 그중 한 사람.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할 지도 모르는 채 무조건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다.

2개의 인쇄소 출입문중 하나를 폐쇄하고 다른 한쪽 문엔 백사무관이
보초를 섰다. 물론 전화코드도 모두 빼놓았다.

그리고 난 뒤 작업개시명령이 떨어진다. 작업물을 뜯어 보는 순간 인쇄소
직원들 모두가 놀란다. 백사무관은 직원들에게 말한다.

"역사적인 일을 하는 것이니 긍지를 갖고 임해달라" 윤전기들은 무더운
여름날 밤새도록 "8.12 긴급명령"을 토해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