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정된 남한송전요금을 미군측이 청산하지 않으므로 대남 송전을
단전코자 한다. 동족끼리 해결할 의사가 있으면 곧 평양으로 오라"

1948년5월14일 오전10시30분, 북한의 전기총국장 이문환의 전화를 받은
남안의 조선전업사장은 느닷없는 통고를 받고 "당국과 상의하여 확답할
터이니 단전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한측은 그로부터 1시간반 뒤인 12시 정각에 일방적으로 단전하고
말았다.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된지 꼭 나흘뒤의 일이다.

47년3월 미군정당국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정이 해방후 남한으로 송전한
전력의 요금으로 400만달러를 청구해 오자 그해 6월17일 남북전력협정을
체결, 북한화폐로 kwh당 15전씩 쳐서 기계 전기용품등으로 환산해 지불
하기로 하고 1차로 수전료의 35%에 해당하는 물품을 보냈다.

당시 물가로 환산하면 약10억원을 웃도는 거액이었지만 북한측은 전력대금
의 20%에 불과하다느니 품질이 불량하다느니 생트집을 잡기에 급급했다.

47년10월에 열린 두번째 남북전력협상이 실패한 직후에는 북한축이 발전
기계 선로등의 고장을 핑계로 송전량을 5만kw 이하로 제한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는가 하면 그해 12월부터는 실제로 송전량을 1만5천kw나 줄였다.

48년1월에는 전기료를 6배나 올리기도 했다.

당시 남한의 발전량은 3만kw에 불과해 총전력공급량의 60%를 북한에서
수전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또 전기료 1차분을 지불한 후에 별수없이 또
40%에 해당하는 물자를 준비해 놓고 북한측이 인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터에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단전을 해버리고 만것이다.

북한측의 단전은 남한에 심각한 전력난을 몰아왔다.

전력수요의 절대부족량은 7~8만kw에 달했다.

생산공장은 주야로 나누어 2교대제 조업을 했으나 생산량은 최고 50%, 최저
15%로 떨어져 휴업상태에 들어가는 공장이 속출했고 양수작업의 차질로
농업생산량도 격감했다.

단전은 이처럼 남한의 산업발전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음은 물론 가정에까지
윤번제배전이 실시되고 30w이상의 전구사용이 금지되는등 국민생활에 크나
큰 피해와 고통을 주었다.

남한에서는 1964년1월1일에야 제한송전이 해제되었으니 19년동안이나
전력난을 겪었던 씁쓸한 감회가 새롭다.

북한핵문제가 잘 해결될 경우 정부는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이런 소식에 문득 5.14 단전소동이 생각나는건 왜 일까.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