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비서실장과 경제수석,그리고 국세청장.

이 자리는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없이는 하루라도 유지하기 힘들다.
문민시대에 들어 대통령 경호실장이나 안기부장이 "실무직"으로 자리를
찾으면서 이들은 경제운용의 가닥을 잡아가는데 대통령에게 누구보다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경제계에서는 이들을 "문민 3대실세"라고 부르기도한다. 이 3대
실세들이 "8.12 실명제"실시를 사전에 알았을까 몰랐을까. 이는 단순히
일반의 호기심 차원으로만 접근해 볼 의문거리가 아니다. 김영삼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케하는
단초가 된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바로뒤편 11층짜리 고동색건물,이곳이 바로
"경제 안기부"로 통하는 국세청이다. 경제부처중엔 유일하게 강북,그것도
청와대에서 직선거리로 약 2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국세청장실은 시야가
좋은 로열층(10층)에 있다. 좀 멀긴 하지만 청와대가 한 눈에 잡힌다.

노태우정권때 국세청장에 "임명"됐고 문민정부에서 "재임명"된 추경석
국세청장. 그는 토지초과이득세 첫 정기과세부과가 사회문제로 들끓던 작년
7월 28일 대통령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국세청장은 공식적으로는
차관급이면서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대기업의 세무조사나 특정개인과 관련된 문제등 절대보안을 요할때 대통령
은 국세청장을 찾는다. 문민정부들어선 거의 없어졌긴 하지만.

추청장은 "토초세로 여론이 비등하니까 대통령까지 전화를 하시는구먼"
하고 수화기를 든다. 그러나 대통령의 첫마디는 전혀 의외였다. "서울청
법인세과에 백승훈이라는 사람이 있지요. 그 친구 내가 중요하게 쓸데가
있으니 내 주셔야겠소. 이경식부총리가 지휘하고 있는 지방경제활성화대책
작업에 사람이 필요한 모양인데 그친구 지금 곧바로 광화문 1청사 이부총리
방으로 보내주시오"

대통령의 유선지시를 받은 추청장은 백승훈조사관을 국세청 10층 청장실로
부른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말단 8급직원을 대통령이 직접
차출할까. 추청장은 궁금하기가 짝이 없었다. 백조사관을 앞에 놓고 추청장
은 궁금증을 풀려고 한다.

"자네 개인적으로 김영삼대통령을 아나"
"모릅니다"
"그러면 이경식부총리를 아나"
"모릅니다"
"자네 집이 부산인가"
"아닌데요"

백조사관의 고향은 충남 논산으로 동대부고와 세무대학(4기)을 나왔다.
89년 국세청 워드프로세서 경진대회에서 1등한 것이 그가 내세운다면
내세울만한 경력이었을 뿐이다.

추청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 친구를 대통령이 차출하는지 도무지 영문
을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건 이 8급직원을 대통령이 지금"지명차출"
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자네 지금 길 건너편 광화문 종합청사에 있는 이부총리 방으로 가 보게.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할것 같으니 국세청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하네"하고 당부한다.

"예 알겠습니다"하고 돌아서는 백조사관에게 추청장은 한마디를 덧붙인다.
"자네 말일세,거기 가서 일하다가 혹시 내가 알아도 되는 성질의 것이라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나에게도 알려 주게나"백조사관은 "알겠습니다"하고
머리를 숙이며 청장실을 빠져 나온다.

백조사관을 보내고 난 추청장은 그러나 금세 생각이 바뀐다. 추청장은
바로 수위실에 연락한다.

"지금 내려가는 백조사관을 다시 내방으로 올려보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린 백조사관은 다시 청장실로 올라간다. 추청장은 좀전의 지시를
취소한다. "아까 덧붙인 당부는 없었던 걸로 하게.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할
정도의 일이면 아마 매우 중요한 일일텐데 내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뭐
있겠나" 광화문청사로 부총리를 찾아간 백조사관은 이부총리방에 대기하고
있던 양수길 부총리자문관 (현 교통개발연구원장)을 따라 나선다. 백조사관
이 간곳은 반포에 있는 양자문관의 집. 여기서 잠깐 기다리다 양자문관의
집으로 찾아온 백운찬 재무부 사무관과 함께 실명제 작업팀이 비밀유지를
위해 빌려쓰고 있던 과천의 한 아파트, 이른바 안가로 간다.

백조사관은 거기서 며칠밤을 새워가며 각종 자료들을 타이핑 쳐내는
"중요한 일"에 투입된다. 그러나 국세청에선 그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낌새도 채지 못했다. 물론 추청장이 다시 백조사관을 본것은
실명제가 발표된 휠씬 뒤였고.

직제상으로는 재무부장관 밑에 있지만 장관 부럽지않다는 얘기를 듣는
국세청장. 한때 "끗발"이 셀 때는 상관인 재무부장관이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기도 했다는 국세청장.

5공시절 안무혁국세청장이 곧바로 안기부장으로 갔듯 국세청은 대통령
직속의 안기부와 격과 일의 성격이 유사하다. 파워도 꿀릴 게 없다. 게다가
실명제는 최종 종착점이 종합과세다. 국세청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런데도 "천하의 국세청장"은 실명제실시 사실을 12일 저녁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서야 안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고"있는 비서실장은 어땠을까. 또 실명제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는 대통령의 최측근 경제참모인 경제수석도 정말로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체 했을까. 경제수석은 5공때 전두환대통령이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말했을 정도로
경제문제에 관한한 파워맨이다.

박재윤수석은 더구나 선거결과가 불투명했을 당시 서울대 교수직을 내놓고
"민자당총재 김영삼"의 경제막료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다. 그만큼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남다른게 사실이다. 그가 입안한 "신경제 5개년계획"
은 문민정부 경제정책의 뼈대이자 "바이블"로 통한다. 박수석은 신경제계획
을 구현해나가는 경제부처들을 조화시키는 지휘자로 꼽혔다. 그러나 그런
박수석도 실명제 실시에는 철저히 소외됐다.

실명제 발표 하루전인 11일 청와대에선 신경제 점검회의가 열렸다. 이때도
대통령의 "말씀자료"를 만든 것은 경제수석실이다."새정부 출범 초기보다는
여러 경제지표들이 개선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그 속도는 국민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게 요지였다. 연설 예정시간은 10분.

실제 연설에 들어간 대통령은 그러나 원고에 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
"경제는 하루아침에 좋아지는게 아닙니다. 앞으로 2,3년은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개혁이 필요합니다"는 얘기가 주조를 이뤘다. 연설시간도 22분으로
늘어났다.

박수석은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매우 고무됐다. 신경제 1백일 계획이 별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언론과 재계의 비판에 좌불안석이었던 그로
서는 "경제가 하루아침에 좋아지는게 아니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일종의
격려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도 대통령이 강조한 "개혁"의 속뜻이
다음날 발표될 실명제의 전주곡이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박수석과 관련된 일화에는 이런 것도 있다. 실명제 준비작업이 한창이던
7월의 어느날 얘기다. 박수석은 3개안의 실명제 실시방안을 마련해 대통령
에게 보고한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구상을 대통령
에게 전달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실시 시기를 94년초로 하고, 그 이전에
금리자유화를 단행한다는게 보고내용의 골자.

대통령은 박수석의 갑작스런 실명제보고에 깜짝 놀란다. 부총리와 재무부
장관의 비밀작업이 흘러나간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정작 보고서
를 훑어보니 자신이 이부총리팀에 내려놓은 비밀지시와는 내용이 아주
달랐다. 대통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지금은 실명제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보고서의
원본을 포함해 모두 파기하라"는게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었다. 박수석은
실명제보고서의 마지막 한장까지 파쇄기를 통해 작은 종이조각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당시 경제비서실에 근무했던 L씨는 경제비서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달
했다. "박수석이 실명제 전격 실시를 안 것은 발표 한두시간 전이었습니다.
실명제 발표소식을 듣고 박수석은 상당히 침통한 표정을 지었어요. 나중에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박수석은 그때 자기가 실명제 작업에서 배제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박수석 자신도 지난 6월 11일 한국금융학회주최로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나는 당시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조기실시에 반대했다. 빨라야
가을 정도에 실시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박관용실장에 대해서도 에피소드가 많다. 비서실장은 직책 상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필한다. 싫든 좋든 대통령을 시도 때도 없이 만난다.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자리란 얘기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권을 거치면서 비서실장이란 자리는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왔다.

문민정부들어 경호실장의 위세는 한단계 격하된 반면 비서실장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더 올라간 측면도 있다. 박실장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실명제와 관련, 박실장에 대한 얘긴 7월 8일로 올라간다. 이날은 이부총리
가 KDI팀을 통해 만든 "시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날이다. 이부총리는
이때 실명제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적어도 두사람은 더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홍재형재무부장관과 박실장.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내가 직접 연락하겠다"며 연락책을 떠 맡았다.

대통령은 다음날인 9일 홍장관을 불러 "실명제 실시방침"을 밝히면서
"자세한 것은 이부총리에게 들으시오"라고 했다. 이부총리는 당연히
박실장에게도 "대통령의 전달"이 있은 줄로 믿었다.

그런데 7월 28일 이부총리와 홍장관이 대통령에게 실무작업 중간보고서를
설명할 때였다.

"실시시기"만 빼고는 <>기본추진계획 <>인력차출계획 <>홍보.교육계획
<>비밀보장방안 <>특별담화요지등이 총망라됐다. 사실상 마지막 보고서
였다. 그런데 이날 보고는 그 전제가 "박실장이 실명제 작업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실무인력이 좀 더 필요했어요. 국세청의 PC요원, 법률사항을 검토할
법제처 법제관등 추가로 동원할 사람과 언제 누가 동원하느냐등을 적어놓은
인력차출계획서를 작성했지요. 그 안에는 국세청요원의 동원책임자가 비서
실장으로 되어 있었어요. 당연히 비서실장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실명제 작업에 깊이 참여했던 김진표 당시 재무부세제심의관(현국방대학원
파견)의 얘기다.

그러나 보고서를 들여다보던 대통령은 "이건 왜 동원책임자가 비서실장
이지"라고 했다. 이부총리와 홍장관은 아연 긴장했다. 대통령은 "내가 직접
하면 되지"라며 그자리에서 국세청장에게 전화를 했다. 결국 그때까지도
박실장한테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 대통령 스스로가 내비쳐 보인 셈이다.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대통령들도 철통보안을 자랑하며 중대사항을 전격
처리했지만 한 며칠 지나면 "나는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는 사람
들이 나오기 일쑤였다. 자칭 "실세"들이 자기과시를 위한 일종의 홍보
였기도 했겠지만.

그러나 "8.12 실명제 긴급명령 발표"는 국민들뿐만 아니라 청와대비서실장
경제수석 국세청장등 핵심 실세참모들에게도 완전히 감춰진 "깜짝쇼"였다.

<박영균.육동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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