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오는 12일로 만1년이 된다.

정부 스스로 개혁중의 개혁이라 부를만큼 경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던 금융실명제의 실시1년의 평가는 엇갈려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당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큰 혼란없이 경제안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의 이유를 찾는다.

금융실명제는 은행 증권 보험등 모든 금융기관과의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도록 하는 매우 당연하고도 단순한 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실시될수 밖에
없었다.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할수 없는 사정이 많았다는것은 우리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않고는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수 없다는
점은 대통령의 금융실명제실시 특별담화에서 강조된바 있다.

음성적이고 변칙적인 금융거래를 없애고 공평과세를 이루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목표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면 그러한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가를 따지는건 지나치게 성급하다.

그리고 지난 1년간의 평가는 우선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실명제
가 성공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실명제실시 이후 지난 6월말까지 가명에서 실명으로 전환한 예금은 금액
기준으로 98.0%, 계좌기준으로는 94.8%에 달해 아직 가명으로 남아 있는
예금은 3만3,000계좌에 557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차명예금은 84만9,000계좌 3조5,049억원이 실명으로 전환, 가.차명 예금의
실명전환액은 6조2,834억원으로 집계됐다.

재무당국은 당초 예상하던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고 자평하고 있으나
실명제실시로 특히 중소기업이 겪은 자금난과 이로인한 도산은 가볍게 다룰
일이 아니다.

오랜기간 굳어져온 관행이나 의식이 바뀌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
그리고 금융실명제만으로 검은 돈을 비롯 부정부패를 뿌리뽑을수도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금융실명제의 공과를 성급하게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제는 실명제가 진짜 뿌리내리게 하기위한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

첫째 금융실명제가 완전히 정착되려면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를 실시
해야 한다.

재무당국은 96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이를 위한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고 있는지 묻고자 한다.

종합과세대상을 어떻게 결정하고 과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종합과세
를 전제로 세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미리 준비해서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아런점을 소홀히 하고 금융소득의 종합과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금융자산
을 실물자산으로 전환시키려는 동기를 유발할 가능성만 커진다.

현재 최대 수십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차명예금의 실명전환을 위해
종합과세의 필요성이 있는건 사실이나 비록 차명예금이라 하더라도 금융
기관에 머물러 있는 돈은 부동산등 실물자산에 투입되는 돈보다 귀중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둘째 과제는 저축을 증대시키고 부동산투기를 억제하면서 금융실명제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실명제는 정착되어 가는데 저축률은 떨어진다면 빈대는 잡았는데
초가는 타고 없어지는 꼴이 된다.

부동산투기나 소비에 쓰일 돈을 금융권에 묶어두는 저축유인이 새롭게
펼쳐져야 한다.

정부당국은 세금우대저축이나 비과세저축을 축소 또는 폐지하려는 것
같은데 저축의 중요성이 사라지지 않는한 세금우대상품의 최대가입한도를
늘리는등 저축유인 조치를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

금융실명제가 정착된다는 것과 부동산투기가 없어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금융자산보다 실물자산을 선호할 가능성은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남아
있다는 점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셋째 기업의 자금난, 특히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풀어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중소기업은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제도금융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영세기업은 사금융에 의존하여 성장하고,
그러한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발전하여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던
것이다.

그동안 사금융에 의존하던 영세기업이 생성발전할 가능성은 분명히 줄어
들었고 이미 상당한 실적을 쌓은 중소기업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게 현실
이다.

유망한 기업이 담보와 신용부족으로 필요한 자금혜택을 받지 못하고
쓰러져야 하는 일이 없도록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지원방안을 확대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도산이 늘어나는등 사태가 심각하게 될 때에 일시적으로 자금을
확대지원하는 식으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기업경영을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실명제의 성공은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한다는 관행이나 의식을 뿌리내리게
하는데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도록 하는 단순한 제도를
관행이나 의식으로 확립하는 노력에 앞서 자칫 준비가 미흡한 법이나 제도를
도입하려는 성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