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집을 나서서 오래간만에 등청을 하는 사이고는 한결 몸이 가벼웠다.
두달 가까이 호프먼이 조제해준 약을 먹으며 요양을 한 효험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육군대장의 군복차림으로 천천히 겯는 사이고의 뒤를 여느 등청때와
다름없이 보좌관이 도시락을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

중대한 안건이라니 뭘까. 요양하고 있는 사람까지 나오라는 걸 보니 무슨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인데.. 아마 조선국과의 사이에 문제가 발생한
거겠지. 그렇지 않곤 당장 긴급 각료회의를 개최할만한 일이 없을텐데..

한동안 나라일에서 떠나 조용히 자기 몸을 돌보고 있던 사이고는 다시
정치문제를 떠올리게 되자 절로 골치가 띵해지는 느낌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왜 그렇게 완고한지 알수가 없다니까. 대원군이라는
고집쟁이를 꼭 한번 만나 담판을 해보았으면 좋겠는데." 사이고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각료회의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개최되었다. 참석한 중신은 태정대신인
산조 사네도미를 비롯해서 필두참의인 사이고 다카모리,그리고 참의인
이다가키 다이스케, 오쿠마 시게노부, 고도 쇼지로, 에도 신페이, 오기
다카도등 모두 일곱 사람이었다.

수뇌부의 절반가량은 구미 사절단으로 외유중이어서 인원수가 적었다.

각료회의의 의장격인 산조가 개회를 선언하고서 말했다.

"오늘 우리가 다루어야 할 안건은 외무성으로부터 제출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다 알고 계시다시피 외무경이 청국에 친선대사로
갔기때문에 대신 외무 소보(차관보격)가 이 자리에 나와서 안건에
대한 설명을 할 예정입니다. 이의가 없으시지요?"

이의가 있을 턱이 없어서 곧 옆방에 대기하고 있던 외무소보인 우에노
가게노리가 들어왔다. 그는 준비해온 문서부터 한장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일어선채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조선국의 동래부에 가 있는 히로즈 히로노부로부터
보고서가 왔는데 그곳 조선관아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닌듯 합니다.

우리측 수교 교섭을 여전히 거절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그곳에 있는 일본관에 식량과 땔것의 공급을 중단할뿐 아니라 심지어
출입도 마음대로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나누어
드린 문서부터 한번 읽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