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49년동안 통치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장 독재적인
체제들 가운데 하나였던 주체사상체제를 이끌었던 김일성이 82세를 일기로
죽음으로써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전환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물론 한국도 새로운 역사적 갈림길에 서게 됐으며,우리 배달겨레
전체의 앞날은 결정적 전기를 맞게 됐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특히 이제부터 남과 북의 운명은
더욱 더 밀접히 연계된 채 하나로 전개되리라는 점이다. 북에서 일어나는
일은 남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고 남에서 일어나는 일은 북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우선 북한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물론 추측과 가상의 범위에 속한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제약되어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일성이 죽은 뒤 일단 그의 아들이면서 후계자로 길러져 온 김정일에게
모든 권력이 승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통치 엘리트들은 김일성이 죽은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대내외적
위기를 심각하게 의식하는 가운데 우선 김일성의 후광을 업고 있는 김정일
주변으로 단결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일단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김정일의 육체적 건강이다.
만52세의 그가 심장병을 포함한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보가 정확한
것이라면,우리는 몇해안에 또한차례의 중대한 장례가 북한에서 치러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북한의 앞날을 내다보려는 우리의
노력은 무척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김정일의 육체적 건강이 앞으로 몇해동안 심각하게 악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북한이 당면한 대내외적 위기들과 관련해서
김정일의 앞날과 북한의 앞날을 전망할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북한에 대한 사회과학적 전망을 다음과 같이 시도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첫째 김정일 후계체제의 잠정적 지속이다. 김정일이 김일성에 의해
후계자로 선정되어 길러진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나면서 김정일의 권력
세습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숙청됐다.

반면에 김정일을 지지하는 인물들은 당과 군및 정의 세분야에 적절히
포진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상은 "노멘클라투라"라고 불리는 붉은 귀족
이다. 지난날 공산국가들에서는 반드시 존재했던 이 특권지배층은 북한
에도 엄존하고 있는데 이 특권지배층의 핵심부분은 바로 김정일의 친위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어 김정일의 권력계승을 철저하게 뒷받침하려고
할 것이다.

비단 들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통치엘리트들은 물론이거니와 북한주민들
가운데 적어도 상층부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단 김정일을 받아들일것이다.

그 기본적인 이유는 김일성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다. 새삼
강조할 필요없이 북한은 한마디로 말해 "김일성의 개인적인 나라"였다.
북한을 위해 김일성이 존재한것이 아니라 김일성을 위해 북한이 존재한
셈이었다.

이러한 곳에서 반신반인으로 여겨지던 김일성이 사라졌을때 남아있는
통치엘리트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은 이만저만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분위기는 그들로 하여금 우선 김정일을 중심으로 모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에게 아버지의 후광 없이도 "위대한 수령"
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보도록 어떤 일정한 시간을 줄것이다.

김정일체제가 잠정체제로 끝나느냐, 아니면 장기체제로 들어가느냐의
물음은 이 시험기에 결정될 것이다.

만일 김정일이 이 시기에 자신의 인품과 능력의 두 측면에서 사람들을
심복시키게 된다면 그는 어려움속에서도 자신의 체제를 적절히 이끌어
가게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게 될때 그는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실각의 비운에 빠질 것이다.

김정일에 대한 도전의 핵심은 역시 군의 지도자들이 될 것이다. 또 당과
행정부의 지도자들도 반기를 들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당.군.정의 중요한 자리들을 차지
하고 있는 40대와 50대초의 간부들이다. 이들 가운데 적지않은 부분은
김일성이 살아있던 때도 김일성 신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녔던 것으로,
그리고 김정일에 대해서는 불만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해외사정에 눈을 뜬 일부 간부들은 북한의 현재 노선이 크게
바뀌어야 북한이 살수 있다는 생각마저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이야말로 김정일체제에 큰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있는 세력인 셈이다.

한편 북한 주민들의 동향도 주목의 대상이 아닐수 없다. 이제까지 북한의
주민들은 힘없는 피치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차차 자신들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할 것이다.

김일성이 살아 있던 때도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부터의 존경심을 지니지 않았던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사람드르이 관찰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의 김일성에 대한 태도와
김정일에 대한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음이 확실하다.

이제 김일성이 죽은 뒤 김정일과 북한의 통치체제를 바라보는 북한주민
들의 눈은 훨씬 더 날카로워 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특히 김정일의
실정이 계속되고 통치엘리트들마저 김정일주변에서 떠날때 북한 주민들은
집단적인 반항의운동을 벌일수 있을 것이다.

만일 북한에서 지난 89년 중국에서 일어났던 천안문사태 같은 것이 발생
할때 김정일체제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북한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지 않을까.

만일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남북한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대목에서 다시 강조해야 할것은 북한의 앞날에 대한 우리의 예측
능력은 대단히 제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앞으로
북한에서는 어떤 일이든 모두 일어날수 있다고도 하겠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정책시나리오가 다양할 수밖에 없음을 말해
준다. 쉽게 말해 북한에서 일어날수 있는 상황들을 모두 예상하면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로서는 북한이 안정을 확보하기를 바란다. 북한의 독재체제가
고와서가 아니다. 김일성 사후체제가 안정되어야 남북한 관계를 안정
시키고 그 바탕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