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노이로제라고 할까. 그런 열등감에 젖어있던 터이라, 오쿠보는
인조수염을 보자 이것 봐라 싶어서 몇개를 구입했던 것이다. 귀국한뒤
내무경을 겸임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자 그는 실제로 그
인조수염을 늘 얼굴에 달고 다녔다.

그가 주로 애용한 것은 구레나룻이었다. 콧수염과 턱수염보다 양쪽
귀밑으로 부터 너불너불하겔 볼을 내리덮는 구레나룻가 한결 위엄있게
보여서였다.

그런 오쿠보를 보고, "저사람 언제부터 저렇게 털보가 됐지?"

"서양 구경을 하고 오더니 털보가 됐지 뭐야"

"서양 물은 털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모양이지? 보라구, 저 구레나룻."

"그게 아니라구. 가짜야, 가짜"

"가짜라구? 가짜 수염을 달고 다닌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서양에서 사왔다는 거야"

"흐흐흐. 그럼 가짜 털보로구나" 이렇게 빈정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사절단은 프랑스에서는 빠리에만 머물다가 다음은 벨기에를 거쳐
네덜란드로 갔다. 네덜란드는 일본에 난학이라는 것을 형성케 할
정도로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도 일찍이 일본과 관계를 가져온 나라였다.
그래서 일행은 자연히 그 나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풍차와 운하의 나라인 네덜란드에 보름가량 체류하면서 이색적인 풍광을
즐겼고 각종 시설을 시찰했는데 조선소와 수족관, 그리고 금강석 연마소
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일찍이 해양국가로 발돋움하여 무역으로 부국을 이룩한 그 현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네덜란드가 국토도 손바닥만하고 인구도 많지 않은 소국
인데 그처럼 세계를 누비다시피 한 사실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 일행도 하면 된다는 각성을 새삼스럽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곳에서 이번에는 독일로 향했다. 베르린에 도착한 사절단은 먼저
수상인 비스마르크를 만났다.

비스마르크는 철혈재상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국내외의 중요문제는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쇠와 피, 즉 무기와 병사들의 돌격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갈파하여 불할된 독일을 무력으로 통일하고 프랑스까지
침공해서 빠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통일독일제국의 발족을 선포한
당대 유럽의 영웅이었다.

비스마르크를 만나 그의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사절단의 큰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