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란 원래 사람들이 물을 건너서 오갈수 있게 하는 편의시설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세계에 함축된 다리의 상징성은 실용성을 뛰어 넘는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피안과 차안,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등
각기 상반되는 개체를 연결시켜 주거나 분리시켜 주는 매개물로 생각되었다.

다리가 하늘과 땅의 결합체라고 보았던 도교사상은 다리가 곧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와의 연결매체임을 일깨워 준다.

옛 사찰들의 구름다리나 입구다리들은 천상과 지상, 이승과 저승의 가교
였다.

한편 오작교 전설에서는 다리가 만남과 헤어짐의 상징물이 된다.

그것은 7월칠석날이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놓는 다리에서 만났다가
헤어지는 견우와 직녀의 비련에서 확인된다.

한반도에서 다리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다리는 413년(신라 실정이사금12년)에 완성된 평양주대교였다고
하나 위치나 축조명세를 알수는 없다.

현재 가장 오래된 다리로 남아있는 것은 750년께 불국사에 조성된 사상
최초의 돌다리인 청운교와 백운교다.

고려때의 것으로는 세계 최초의 단순교인 개성의 선죽교, 개풍과 장단
경계의 취적교, 함평의 고막교등이 돌다리로서 남아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종교적 실용적 이유에서 많은 다리들이 만들어졌다.

서울 청계천에만도 7개의 다리가 놓여졌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놓인 것이 광교(대광통교)다.

그 이름처럼 규모가 가장 큰 다리다.

태조때 흙으로 축조되었다가 1410년(태종) 홍수로 무너지자 돌다리로
개축한 것으로서 왕릉을 옮긴 정릉의 석각신장 12개를 옮겨다가 이용했다.

그런데 수표교와 더불어 유이하게 남아 있었던 광교는 이런 역사적 연유
에도 불구하고 1958~61년 청계천복개공사때 그속에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수량을 재는 과학적 기능을 지녔던 수표교(서울시 문화재)가 장충단공원
입구 개천으로 옮겨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에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닌 광교가 외면을 당한 이유를 헤아려볼 수가 없다.

서울 정도600년을 맞아 아쉬운대로 광교모습이 축소모형으로 재현되어
오늘부터 공개되지만 문화재를 경시한 어리석음의 흔적은 지워질수가 없다.

다만 시궁창에 처박힌 한민족얼의 상징인 광교에 서울시의 "이전복원약속"
대로 햇빛이 조속히 깃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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