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객의 사망을 마냥 의외성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어도 현명치 못하다.

노인을 위해 관까지 짜놓던게 고래 이땅의 관습아니었나.

김일성주석의 부음은 단연 세계의 톱뉴스다.

국내외 방송에서 "충격적" "당황" "착잡"이란 반응이 흘러 나왔다.

여운있는 이런 반응은 그가 가치론을 떠나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뚜렷한 존재였음을 뜻한다.

게다가 시의 절묘가 있다.

역시 최후의 인성은 선한 모양이다.

평양회담 준비에 바쁘던 통일원 직원들의 "허전하다"는 말에 집약되는
"너무나"라고 할 정도로 적극화한 북측의 최근 자세가 친근감을 샀다.

현인신의 존재인 김주석이 생존시에 스스로 실마리를 풀지 않은채 떠나고
나면 한반도 통일은 오히려 지연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어 왔다.

누구나 그의 죽음으로 정상회담이 무산되는 것을 아쉬워한다.

상당수는 어차피 그가 이미 연노해 통일완성까지 못할바엔 오히려 일찍
가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된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그 생각에도 충분한 타당성은 있다.

그의 북한내에서의 존재가 하도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생존해 있는 한 그의
의사에 반하는 방향으로 정세진전이 힘든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비관론도 낙관론도 큰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의 변수에 있다.

우선 최대의 변수는 후계체제다.

국가주석과 당총서기라는 권좌는 오랜 준비대로 장남 김정일이 차지하는
외엔 당장의 대안이 없을 것이다.

김주석이 사후의 격하를 두려워 친자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20년이상 터를
닦았고 그속에서 경쟁자가 마음조차 먹을 빈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산권의 관례로 후임 내정자가 맡는 장의위원장 자리도 김이 맡았다.

그러나 그의 통치기간에 대해선 추측이 난립한다.

심하면 김의 집권은 최단 단 3분, 최장 30년이라는 재담도 있다.

독재권력이란 인기와는 무관, 감시와 철권으로 상당기간 끌고 갈수
있다든가 김이 의외의 능력을 가졌다는 논거의 장기집권설도 나온다.

반면 김은 역부족이어서 실각은 시간문제라는 설이 역시 다수설이다.

단명설에는 논거들이 풍부하다.

(1)봉건신분 타파를 핵심사상의 하나로 하는 공산주의에서 지위의 혈연
승계는 자체모순이라는 점 (2)그같은 무리를 하면서도 반세기동안 권좌를
지킬수 있었던 김주석의 카리스마와 종군경력을 결여의 정일에 대한 군
원로들의 충성 가능성 희박 (3)고립된 국제환경과 침체된 경제형편속에
고조되는 민심의 이반을 김주석 아니고는 무마하기 힘든다는 점 (4)김영주
김성애등의 복권에서 엿보이는 유족을 둘러싼 세력갈등 가능성 (5)공개활동
기피적인 김정일의 성격상 대외관계 발전의 한계점등을 들수 있다.

다음 변수는 대외적인 것이다.

한국을 필두로한 외부세력이 김주석이 이끌던 북한과 그가 떠나고 없는
북한을 똑같은 태도로 대할 것인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김주석은 구공산권 안에서는 물론 오늘까지 가장 가까운 지지세력인 중국의
원로들과도 오랜 교분을 가졌다.

또한 김주석은 노련한 수완으로 대외관계를 요리해 왔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대북한 관계에 신중을 기했던게 사실이다.

한데 서방세계뿐 아니라 몇 남지않은 사회주의 국가도 이념이나 실리면에서
공감대가 약해진 북한에 대해 향후에도 계속 지지를 보낼 것인지 의문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상대는 한국이요, 그 연장선상의 미국 일본이 있다.

대명사, 아니 나라 자체였던 김주석을 잃은 북한 권부의 행동폭은 크게
좁아질 것이다.

도리없이 패배주의가 확산될 것이다.

최소한 남쪽에서 선공이 없다고 확신하는 한 대남도발의 용의는 갖지 못할
것이다.

물론 진짜 핵을 가진 상태에서 권력자나 군부의 실력자가 독에 든 쥐처럼
구석에 몰릴 경우가 생긴다면 도발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수 없다.

이런 의외사태에도 물론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남의 원숙한 대응이다.

첫째 고인에 의해 무르익던 북의 새로운 대화노선, 특히 정상회담을 성사로
유도하는 남의 노력이다.

준비가 구체화된 정상회담은 이를 백지화하지 말고 새상황에 맞게 수정
제의하는 편이 좋다.

상대는 직명 여하간에 김주석을 대신할 실권자라야 하고 시기는 서두르지
말고 저쪽에 시간을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장소다.

당분간 서로가 상대방 지역에 가는 것은 합당치 않고 판문점이나 제3국이
좋다.

둘째 핵개발 중지만 관철되면 과감하게 대북 경제협력에 나서야 한다.

그들은 이제 당당한 경쟁에서 남을 추월하기 힘든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무소불능으로 간주된 김주석에겐 오류의 시인이란 있을수 없었지만 향후는
다르다.

김정일이 아무리 경골이라 해도 역시 젊기 때문에 세계조류를 실감하는
면에선 부친보다 낫다.

그럴때 진정한 협력자가 있다면 동포뿐임을 그들이 스스로 알게 유도해야
한다.

셋째 그들을 국제무대에 과감하게 끌어내야 한다.

핵문제만 해결되면 미.일과의 수교를 이젠 남이 도와야 한다.

그런 단계를 모두 거치면 평화조약으로의 대체, 군축추진, 미군철수등
통일 환경의 조성이 착착 진척돼 간다.

그러나 조급성과 과욕을 가지고는 이 모든 과정의 안전한 이행을 그르치고
또다시 의외의 난관에 다시 봉착한다.

정말 어른스런 지도력을 남북동포가 갈망하는 새시대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