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접하면서 우리는 그의 죽음 역시
그의 생애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는 감회에 젖지 않을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공산주의 통치자였던 김주석은 우여곡절끝에 49년간에 걸친
고립과 폐쇄의 빗장을 열고 나와 국제사회를 향해 평화의 제스처를,그리고
남한에 대해서는 민족화해의 몸짓을 보여준지 몇 주일도 채 못돼
민족비극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홀연히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김주석의 사망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인접국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북한핵문제를 둘러싸고 제네바에서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이 진행중인 데다 오는 25일에는 평양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던 터여서 충격은 더 클수밖에 없다. 한반도 지각변동 예고
세계적 냉전질서가 무너진 뒤에도 한반도에서만은 북한핵 문제가 불거져
나와 냉전체제가 오히려 심화돼 급기야 전쟁일보직전의 긴장감마저
감돌았으나 남북정상회담합의로 가까스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때에
김주석이 사망함으로써 한반도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된다고 하겠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부산하던 우리 정부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대통령주체로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하는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신속한 대응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부는 김주석의 사망이 고령에 따른 자연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북한이 외국 조문사절의 방문을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남북대화에 반대하는 북한내 강경파들에 의해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앞으로의 북한정세를 전망하는 데는 일단 사망원인을
밝히는 일이 하나의 열쇠가 될것으로 보인다.

김주석 사망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관심사는 뭐니뭐니 해도 후계체제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이냐는 것이다.
김주석의 개인적 권력은 근대국가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막강했기에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권력이 남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사망에 따른 급격한 권력 이양은
최고지도자의 교체경험이 없는 북한사회의 특수사정을 감안할 때 감당키
어려운 충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이 80년10월의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후계구도를 공식화한 이래
김정일은 폭넓은 정치기술을 습득했고 외교분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후계자의 역할을 해왔다. 김주석에 준하는 상징적 위치도
향유해왔고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이론가로서의 면모와 지도력을 거듭
과시해 왔다. 따라서 모든 권위의 공식적 승계가 계획된 절차에따라
이루어졌고 또 충분한 시험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김정일체제가 극복할수
없는 치명적인 도전은 예상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힘과 상징에 의해 계획되고 관리된 형태이기
때문에 정당성이 약하다는 것이 결정적 약점임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세습의 준비과정에서도 상당한 정치적 저항을 힘에 의한 응징으로 극복한
사례들도 많았다. 따라서 잠재적 갈등요인과 복잡한 세력집단들로부터의
도전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분간 긴장관계 각오해야
그다음 우리의 관심대상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는
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남북정상회담의 취소가 불가피할 뿐더러
당분간은 긴장관계를 각오해야 할 것같다.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굳힐때
까지는 얼마동안의 내부적 통제강화기간이 필요할 것이며 어느정도 내부를
다졌다고 판단될 때에만 대화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 정정을 주시하면서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김일성주석만 사망하면 북한이 곧 개방될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을 비롯한 특권을
누려온 측근들에게는 불확실하고 위험이 예견되는 개혁 개방보다는 당분간
현상태를 유지하면서 소폭의 개혁이나 개방을 허용하는 소극적이고 신중한
길을 택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위기관리 국제공조를 김주석의 사망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주변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단 대북한 관계개선의 움직임을 중지하고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게
될것이다. 일본 역시 미국과 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 혁명1세대의
동지를 잃어버린 중국으로서는 말로는 물론 김정일체제를 지지하겠지만 그
지지도는 전과 같지 못할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의 입장에선 북한이 정치안정을 찾을때까지 안보태세를 강화하고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한.미.일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주변국들의 국제공조체제를 구축해 한반도의
위기를 공동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 봄직도 하다.
김주석의 사망은 종국적으로 남북 관계나 통일의 실현에 유리한 국면을
마련해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 사회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나 국민 모두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한반도의 비상시국을 빨리 안정시키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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