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바다위기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화해기운으로 급전하면서 국내외의
반향은 고양되고 있다.

정상회담 날짜가 다가올수록 국내에서는 마치 통일은 시간문제인듯이
실향민은 물론 정계 재계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성급한 몸짓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병이 깊을수록 치유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50년 앓은 분단병의 치유에는 최소한 수년의 시일이 필요하다.

왜냐 하면 몸의 병보다도 마음의 병이 더 깊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은 골이 깊다 국토분단의 책임은 외세에 미룬다 해도 그동안
벌어진 마음의 간격은 우리 스스로 너무 깊이 골을 판 결과다.

그 파인 골을 완전히 메우는 데는 기성세대가 가고 새싹들이 그 자리에
앉을 몇 십년의 세월이 소요될지 모른다.

한반도가 독일과도 크게 다른것은 무엇보다 내전경험의 유무에서다.

이국간의 전쟁보다 내전은 마음의 분단을 낳는다.

남북간 마음의 골을 정상회담 몇차례로 극복할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마음의 골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대립을 뜻한다.

감정은 자존심의 문제로 직결되므로 언어소통에서 오히려 빗나갈 위험마저
있다.

어문을 공유하면서도 오랜 단절로 오해의 소지를 많이 안고 있다.

또한 남북간의 간격은 아집에 더 큰 원인이 있다.

따라서 그것을 좁히는 길 또한 너무 많은 말의 향연보다는 현실적이익,
실리의 뒷받침이 긴요하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 경성발언을 해야 체통이 서는 정치인의 입장에선 별 말을
다할수도 있을 것이다.

"흡수통일은 안하겠다고 분명히 해라" "과거 핵을 합쳐 비핵다짐을 받아
내라" "어려운 경제를 도와 준다고 해라" 심지어 "6.25도발 책임을 추궁
하라"등등 정상회담에 대한 각종 주문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자.

전쟁하지 말고 잘 지내자는 회담, 평화회담을 어렵사리 차려 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면 회담은 어디로 가는가.

말보다 실리 뒷받침 객관적으로 봐서 더 급한 쪽이 북인것은 틀림없으나,
핵으로 배수진을 친 저들이 공감을 각오하고 대들기 때문에 일전을 치르지
않으려면 대화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절박성이 남쪽에도, 우방에도
있는 것이다.

결국 상황을 종합해볼때 어려운 상대를 맞고 있는 우리로선 형식 체면
모양새에 매달리기 보다 전쟁회피, 평화정착, 경제실익, 통일접근의 가능성
등 단계적인 실익추구에 역점을 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본다.

물론 그 이익은 상대방에도 분점되는 호혜성이어야 함은 말할나위 없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첫단계는 무엇이 되겠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감정을 배제할수 있는 가치중립적 접근이다.

대뜸 정치협상도 아니고 군사회담 예술합작 교육이나 학문도 아니다.

그러한 분야는 역시 색깔없는 경제다.

경제분야중에도 감정이나 이념이 가장 배제되는 부분일수록 유리하다.

따라서 맨 첫번째 단계는 이미 수년동안 명맥을 잇고 있는 물적 교류, 즉
무역의 본격적 확대여야 한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려 합의서가 교환되던 92년에 2억1,350만달러에
이르던 교역규모가 핵문제가 발생한 지난해부터 다소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격렬한 감정대립에 비하면 교역의 감소는 대단치 않다.

특히 가장 감정적으로 치닫던 금년 1~5월사이에 교역은 왕복으로 전년
동기대비 3% 늘어난 7,982만달러였다.

그 가운데 대북반출은 255만달러에서 888만달러로 늘어 증가율이 248%나
된다.

반출액 급증의 현실적 요인은 남쪽 기업의 대북 위탁가공 급증이라고 한다.

상품은 전선을 뚫는다 세계사에서 삼엄한 전선을 뚫는 역할은 상혼의 차지
였다.

대륙을 석권한 나폴레옹의 대영봉쇄때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을 살린 것은
무역상들이었다.

6.25직전까지도 38선을 사이한 상인의 내왕은 끊이지 않았다.

중국과 대만은 정치적 대립은 거세보이지만 오래 묵인된 대규모 해상무역의
유대가 더 강하게 내면의 끈으로 당기고 있다.

그런 여유를 대륙기질이라고 오불관언할 것인가.

남북한 사이에는 과연 여유보다 핏대, 실속보다 명분, 평화보다 권력이
우선해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애국애족, 통일을 입으로 외쳐대기 보다는 이제 조금씩 행동으로 할때가
온것 같다.

그 행동이란 서로간에 감정 건드리지 않고 실질적 상호이익을 존중하면서
교류 왕래를 한단계 한단계 확대하는 작위와 불작위이다.

단순교역 임가공 합작공장등 경제부문의 교류확대를 본궤도로 삼되 인도적
으로 시급한 고령 실향민간의 소식교환과 재회추진, 체육 문화인의 교류,
언론의 제한적 교환등 왕래를 넓히는 순서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다 보면 불신대신 신뢰가 쌓여 부전과 평화와 통일로의 진척이 가능해
진다.

이번 회담의 전략목표를 합의 최소화, 실현 최대화에 둬야 성공한다는 것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