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어떤 물건이라도 그것을 소유하게 될때는 반드시 그것으로부터
받는 기쁨과 고통이 있다.

애인이 생기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
시간적으로 감정적으로 치루어 내야 할 희생이 따른다는 것은 정한 이치다.

만약 그 기본적인 책임과 예의를 저버리면 그 애인관계는 깨어지게 되어
있는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작은 물건에도 이와같은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예를들어 한대의 자전거를 가졌다면 그 자전거가 주는 편리성과 즐거움만을
취하고 그 자전거를 가진 주인으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을때는 그
개인의 비인간성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엄청난
확대로 진전될 수가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소유란 가져서 좋은점보다 가져서 귀찮은 부분이 더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져서 좋은 작은 편리성때문에 엄청난 불편함을 감내하는것 - 그것이
자동차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누구나 몇번 경험이 있으리라. 밀리는 자동차 행렬이나 바쁘기는 한데
도저히 주차가 불가능할때 아깝지 않게 자동차를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의
순간을, 그러나 그러한 곤혹스러운 순간에 자동차의 귀중함보다는 우리들의
개인감정의 선택이 주변사람들에게 미치는 불편함때문에 견디어 내어야
할때가 훨씬 더 많다.

생활의 도덕은 남을 생각할때 바로 나자신이 도움받게 되어있는 진리같은
것이다.

그런 균형속에서 우리들은 우리가 가진 소유물로 반은 편리하고 반은
고통을 치루어야 하는 것이다.

며칠전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필자는 10여분을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뿐만이 아니라 뒤에는 몇분만에 몇대의 차가 줄을 잇고 서있으며 무슨
사고라도 났는가 고개를 빼고 앞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골목길은 작은 주차장이 되었다. 클랙션을 누르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필자앞을 버티고 서있던 차의 주인공은 바로옆 작은 슈퍼에서
한아름 물건을 사오는 여유를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순간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민망한 욕설이었다. 필자는
그 대책없는 자동차의 주인공이 여자라는데 자존심이 상했다.

욕설의 절반은 여자라는 것에 더 포인트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있잖은가. 여자를 욕할때 가장 손쉽게 나오는 힐난의 욕 "여자라는 것은
그저..."

더 심한 말은 마음에 덮어둘수 밖에 없지만 그런 경우 속으로 필자도
욕을 했으므로 욕한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여자일 경우 더 욕을 하는것은 올바른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을 그
순간 했고 중요한 것은 어쩌자고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골목에 턱 차를
세워놓고 장을 봐 오는 몰염치한 여자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자를 떠나 인간적으로 자동차를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동차야말로 소유의 편리점보다 그것으로 고통받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닌가. 자기는 편리하고 남에게는 불편을 주는 생활도구라면 그것은
공중도덕을 짓밞는 흉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자동차는 날로 늘어난다. 대학생들의 오너도 이젠 상식이 되었다. 공중
도덕의 기본교육이 시급하고 아쉬운 지점에 우리는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