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지 이틀째인 25일 오후 5시께
서울시부시장실. 청와대관계자로부터 갑작스레 전화가 왔다.

경희대에서 농성중인 지하철노조원중에 복귀희망자가 많으나 규찰대가
이들을 강압으로 막고있다는 정보가 있으니 사실을 확인해 언론에
발표하라는 지시였다.

시를 난감하게 만드는 "주문"이었다. 시나 공사직원을 경희대에 투입,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이 주문은 결국 2시간만에 없었던 지시로 끝났다. 이는 결국 청와대
관계자가 파업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하나의 해프닝이었다.

철도와 지하철의 파업은 이미 몇달전부터 충분히 예고된 사안이었다.
예고된 파업이 실제상황으로 전개된데는 정부의 경직성과 협상에 임하는
안이한 자세가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연환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은 지난4월중순께 임금협상을 앞두고 열린
94임투발대식에서 정부의 3%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분쇄하고 전국기관차
협의회(전기협)및 전국노동자대표회의(전노대)와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발표했다.

89년 5월 발족한 전기협도 기관사들을 주축으로 5~6년간에 걸친 준비
작업을 통해 변형근로제철폐 등 근로조건개선등을 요구하면서 강경하게
맞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서울지하철공사측은 실로 "태평성대"(?)였다. 공사측은
정부의3% 인상지침이 마지노선이라며 맞섰다. 그러니 두달동안에 걸친
11차례의 협상이 될리 만무인 것이다.

지하철파업은 정부와 서울시 서울지하철공사라는 종적 구조관계의
경직성에서 기인한다.

근로자들의 직급및 호봉간 임금구조는 노사임금협상에서 결정되는게
통례이다. 그런데도 실제는 서울시 투자관리실이 매년초에 결정하고
있는것이다. 근로자들이 기본급을 올려달라고 외쳐봤자 3%라는 거대한
"공룡"에 맞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전기협이 이달초 서울지하철노조 전노대와 공동투쟁키로 선언하자
다급해진 철도청이 내놓은 "철도직원 처우개선안"도 우여곡절끝에 나온
미봉책이었다.

경제기획원이 개선안을 들어줄수없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경제기획원장관
교통부장관 철도청장등이 한자리에 모여 갑론을박을 벌인끝에 겨우
얻어낸 것이다.

이 개선안은 목표(파업)를 향해 돌진하고있는 기관차를 막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파업사태를 불러일으킨 근인은 철도청과 공사측의 안이한 태도에
있다.

공사측은 자신들이 노사협상에서 대표성과 자율권을 갖지못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어차피 우리힘으론 안된다"는 체념에 젖어있다.

임금협상중에 임금인상 3%의 상향조정을 정부측에 건의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철도파업은 철도청의 대표적인 "무사안일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발생
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철도청은 전기협이 불법단체라는 이유만으로
6천5백여명의 조합원을 갖고있는 이 단체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했다.

"철도청은 이들이 극단처방인 파업으로 치닫기전에 보다 현실적인 처우
개선안을 왜 내놓지 않았는지" 이번 철도파업으로 홍역을 치른 시민들
모두가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이성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