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느냐는 물음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많을것이다. 존엄한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하찮은 돈과 비교할 수
있느냐는 도덕적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물음을 제기하고 이에 대해 답을 찾아 놓아야만
할 경우가 있다는데 있다. 이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어떤 경우에도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따져서는 안된다는 도덕군자의 말만 되풀이하는
것도 답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 안전시설을 설치할 것인지의 여부를 고려하고
있는데 이것이 설치될 경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 감소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는 좋든 싫든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따져야만 이를 실행에
옮겨야 마땅한지의 결정을 내릴수 있다. 만약 생명이란 것이 억만금의
돈을 주고도 바꿀수 없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들더라도 그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렇지만 합리적인 사람으로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주장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주 큰 소리로 생명의 존엄함을 강조하던 사람
조차도 이 시설에 10조원이나 되는 돈이 든다는 말을 듣고는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이 시설에 소요되는 비용이 100억원인데 한사람의 생명이 1억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면 그 시설은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정부의 사업중에는 이렇게 생명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평가할수 있어야만
그 타당성을 평가할수 있는 사례가 많다. 사용할수있는 자원이 무한하다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사업을 모두 실천에 옮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용가능한 자원에 명백한 한계가 있는 현실적 상황에서는 우선
순위를 정해 더 큰 가치를 가진 사업부터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몇가마의 쌀과 비교해야만 하는 불행한
선택의 문제에 자주 직면하게 된다. 생명의 가치를 실제로 계산하는데는
다음의 두가지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된 소득으로 평가하는 방법인데
인적자본 접근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안전성의 증대를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액을
측정하여 생명의 가치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지불의사접근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방법은 설문조사를 통해 직접 묻거나 사람들의 선택행위를
관찰하여 생명의 가치를 추정한다.

예를 들어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화재경보기를 구입하는 행위나 보수는
적더라도 더욱 안전한 직업을 선택하는 행위등을 추정의 근거로 삼을수
있다.

선진국의 교통관계부서들은 나름대로 생명의 가치를 계산해 놓고 정책적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 수치들을 보면 미국의 경우 생명의 가치를
260만달러로 평가하고 있는데 비해 네덜란드에서는 13만달러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선진국 사이에서도 격차가 크다.

생명의 가치를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로 뽑아 놓고 있다는 사실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경제생활에서
피할수 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