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게 산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수 있을까. 또 그 반대로 가난하게
산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할수 있을까.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어떤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부유한 가운데도 불행이 있을수 있고 가난한 가운데도 행복이 있을수 있다.
행복도 불행도 절대적인 것일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라진다. 행복과 불행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영어의 행복이란 단어인 "happiness"는 원래 "옳은일이 자신속에 일어난다"
는 뜻을 가진 "happen"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처럼 행복은 사람의 올바른
마음가짐의 성과일뿐 외부에서 찾아드는 운명의 힘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도 인간의 행복은 육체나 돈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올바름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인간은 문명의 진보와 더불어 날이 갈수록 물질적 소유를 중대
시키는데서 행복을 찾으려는 성향이 보편화되었다. 그 단적인 소산이
1인당GNP(국민총생산)라는 숫자놀음이다. 그것이 한 나라의 국민들이 잘
살고 못 사는가를 가늠해 주는 잣대로 통용되어 왔다. 1인당 GNP가 곧
행복지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로 미루어 본다면 1인당 GNP가 높은 나라의 사람들일수록 그에 비례하여
행복한 삶을 누려야 마땅하다.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수명 교육수준 기초구매력등을 바탕으로 각국의
삶의 질을 산출한 인간개발지수가 1인당 GNP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예증이다. 1인당GNP가 16위(92년)밖에 안되는 캐나다가 삶의
질에서는 가장 앞선 나라가 된 것은 GNP의 허구성을 말해 주고도 남는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환경연구소가 내놓은 "삶의 질"보고서도 지난 40년
동안에 많은 국가가 소득이 괄목할 정도로 늘어 났는데도 사회범죄와
환경파괴의 증가로 삶의 질은 그 역으로 나빠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최근 유엔아동기금(UNICEF)도 선진국의 유아사망률과 기아가 개발도상국
보다 훨씬 높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될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해 주었다.

"풍요속의 빈곤" "행복속의 불행"을 되짚어 보면서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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